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유럽은 원래 시위와 파업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챔피언은 그리스와 프랑스라는 말이 있다. 지난주에도 그리스 노동자들은 실직 사태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고, 프랑스에서는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수백만의 시위와 파업이 두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프랑스 정유업계의 파업으로 전국 주유소의 3분의 1에 가까운 4000군데에서 기름이 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금개혁으로 노인들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불안 때문에 파리의 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가담하여 세대 갈등 양상까지 나타났다. 노조 지도자들은 피끓는 고등학생들의 시위 가담이 자칫 폭력사태로 번질까 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번 연금개혁의 핵심은 퇴직연령을 60살에서 62살로, 연금의 완전수급 개시 연령을 65살에서 67살로 각각 두 살씩 올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코 과격한 개혁은 아니고 상당히 온건한 내용이지만 그래도 반발은 컸다. 지난 금요일 마침내 연금개혁법안이 상원을 통과했고, 주말부터 고등학교가 학기 중간 방학에 들어감으로써 이번 사태는 일단 한고비를 넘겼지만 최종 결과는 좀더 두고봐야 안다.
대부분의 국가는 안정된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공적연금제도를 가지고 있다. 공적연금제도는 선진국의 복지재정 가운데 최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보장정책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1990년대 이후 공적연금의 재정위기가 발생했다. 그 이유는 저출산·고령화 현상, 연금제도의 저부담-고급여로 인한 연금재정의 고갈, 세계화,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 등이다. 따라서 종래의 연금제도는 지속가능성이 없어 대대적 개혁이 불가피한 나라가 많으며, 실제 연금개혁으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하거나 정권이 흔들리는 경우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선진국의 연금개혁 경험을 관찰해보면 공적연금의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려는 몇 가지 공통된 노력이 있다. 퇴직연령 연장, 기여금 인상, 급여 인하, 급여에 대한 과세, 부양가족 범위 변경 등의 방법을 통해 급여를 감소시키거나 수입을 증가시키는 방안이 그것이다. 요컨대 연금개혁의 핵심은 국민으로 하여금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도록 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인기 상실 백화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론조사를 보면 프랑스 국민의 70%가 이번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노조에 동조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평소 스타일대로 충분한 토론과 설명 없이 이번 개혁을 강행했다. 일단 개혁안의 상원 통과에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에게 소통 부재의 인상을 남겨 2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역풍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연금개혁의 승리는 사르코지에게 ‘피로스의 승리’(너무 많은 희생이나 비용을 대가로 치러 패전이나 다름없는 승리라는 뜻)가 될 수도 있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