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지난 3일 미국 연방은행은 6000억달러에 달하는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조처를 발표했다. 이번 조처는 2008~09년의 1조7000억달러에 달하는 제1차 양적 완화에 이어 제2차 양적 완화(QE2)라 부른다. 쉽게 말해서 돈을 푸는 것인데, 국채 수요가 증가하면 그 가격이 상승할 것이고 이는 곧 금리 하락을 의미한다. 금리 하락은 민간 투자를 자극하여 경기회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이 정책이 기대하는 바다.
양적 완화의 배경은 무엇인가?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부도를 시작으로 미국을 엄습한 불황이 2년이 넘었지만 도무지 경기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실업률은 여전히 9.6%로 고공행진이다. 이달 초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것도 무엇보다 불경기, 실업 때문이다. 게다가 중간선거 압승으로 하원에서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확장 정책을 반대할 것이 뻔하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은행이 경기부양의 깃발을 든 것이다.
벤 버냉키 의장은 대공황을 깊이 연구한 경제학자인데, 그는 공황 때는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 적이 있어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이번 조처는 그의 별명에 딱 맞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양적 완화에 대해 국내외 반응은 차갑다 못해 부정적이다. 비판의 요지는 첫째, 이 조처는 국내외에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다.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1%인데 연방은행은 2%까지는 괜찮다고 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에 풀린 돈이 미국 국내에 머물지 않고 고금리·고수익을 찾아서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 자원과 석유 가격을 앙등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양적 완화는 달러 가치를 내리고 신흥국들의 통화를 평가절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신흥국들은 가만히 앉아서 평가절상을 당한 셈이고 수출에 타격을 받게 된다.
각국이 미국의 양적 완화를 ‘이웃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미-중 간의 환율 싸움을 ‘환율 전쟁’이라고 처음 이름 붙였던 브라질의 재무장관 기두 만테가는 미국의 이번 조처에 대해 “누구나 경기회복을 바라지만 단순히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살포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비난했다. 브라질은 달러가 자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인이 자국 국채를 구입할 때 매기는 세금을 6%로 올렸고, 타이도 비슷한 정책을 발표하는 등 각국이 자본통제에 나서고 있다.
오바마는 이번 서울 G20회의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갔다. 많은 나라들이 이번 제2차 양적 완화에 분개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외국의 원망을 듣더라도 국내 경기가 회복되기만 하면 그게 곧 세계적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터인데, 문제는 그것조차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돈 살포마저 실패하면 미국 경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꿈적도 않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닐지 그게 더 큰 걱정이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