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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슬픈 아일랜드

등록 2010-11-28 20:18수정 2010-11-29 09:12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로 억압받은 고난과 궁핍의 역사를 가진 점에서 우리나라와 통하는 점이 있다. 19세기에는 대기근으로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이민을 떠났다. 지금도 아일랜드 총리 집무실에는 ‘아일랜드의 눈물’이라는 촛불이 1년 365일 켜져 있다. 그것은 가난으로 집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징한다.

그러던 아일랜드가 1990년대 이후 고성장을 구가하면서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비견되는 ‘켈트 호랑이’로 불리게 됐다. 노사정 대타협이 성공하고 12.5%라는 유럽 최저의 법인세율과 저임금으로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 정보기술(IT) 붐과 고도성장에 성공한 것이다. 아일랜드는 2004년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로 선정됐다. 고도성장을 기념하여 수도 더블린에 120미터 높이의 첨탑을 세운 것이 2003년, 그해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숙적 영국을 앞질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다시 고난이 찾아온 것이다.

고성장을 이끈 것이 건설투자였듯이 결국 문제를 일으킨 것도 부동산 거품이었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 호황을 맞아 은행들이 부동산 대출을 마구잡이로 늘린 결과 주택가격은 폭등을 거듭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부동산 경기침체가 닥치면서 은행 건전성에 치명적 문제가 발생했다. 부실은행에 대한 정부지원이 늘어나면서 건전했던 정부 재정마저 나빠졌다. 2008년에는 재정수지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고, 올해는 국내총생산 대비 32%로 악화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재정건전성 기준인 ‘GDP 대비 재정적자 3%’를 열배 이상 초과하는 수준이다. 정부 부채도 올해 100%로 급격히 높아졌다.

최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국가 부도 때 납세자들뿐만 아니라 민간 채권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하자 투자자들은 아일랜드 국채를 대량으로 내다팔기 시작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부도 사태 때부터 국내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즉, ‘남의 나라가 방만하게 재정을 운용해서 발생한 위기를 왜 독일 국민이 세금을 내서 해결해주느냐’라는 비판이다. 이 문제가 조만간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을 앞두고 있어서 이런 제안이 나온 것이다. 이 조항은 확정된다 해도 2013년 이후 시행되는데 마치 현재 채권 소유자들한테도 부담이 가는 것처럼 오해가 일어나 아일랜드 채권의 투매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태가 악화하자 아일랜드 정부는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유럽연합과 국제통화기금이 아일랜드에 대해 850억유로의 구제금융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을 껐지만 앞으로가 첩첩산중이다.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아일랜드는 4년간 100억유로의 재정지출 축소(복지지출 감소, 공무원 봉급 삭감, 최저임금 인하 등)와 50억유로의 증세를 약속하고 있다. 이는 광범위한 국민의 고통을 수반하므로 내년 봄 총선에서의 정권 교체는 불문가지다. ‘아, 목동아’의 슬픈 곡조처럼 식민지와 빈곤의 굴레에서 신음해온 아일랜드가 이 고비를 잘 넘기기를 기대해본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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