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했던 그리스, 아일랜드가 결국 구제금융에 의지해서 겨우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서양 건너 미국의 재정적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공무원들의 봉급을 2년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고 상하원 의원들도 지난 4월 스스로 봉급 동결을 선언한 바 있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조처들은 효과가 미미해 바다에 돌 하나 던져 넣는 격이다.
재정적자 축소를 목적으로 지난 2월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민주당, 공화당이 초당적으로 구성한 ‘재정적자 대책위원회’가 재정적자 축소 방안을 마련했으나 지난 3일 최종 표결에서 부결되고 말아 오바마 행정부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게 되었다. 재정적자 축소 방안에는 퇴직연금 수령 시기의 연기, 각종 세제 감면의 축소, 연방 공무원의 감원, 유류세 15% 증세 등이 포함돼 있다. 내용은 좋은데 문제는 정치다. 대책위 위원들이 주로 국회의원들이라는 사실이 실패를 예약한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나라에 이로워도 내 선거에 불리한 것은 배척해버리는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몸에 좋아도 입에 쓴 약은 안 먹는 어린애와 뭐가 다른가. 재정적자 축소에는 왕도가 없다. 정부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거나인데 문제는 둘 다 인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보장 축소를 싫어하는 민주당과 증세를 반대하는 공화당, 이런 두 당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애당초 어려운 일이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인 1조3000억달러로 작년에 이어 전후 최고 기록이다. 연방정부 부채는 13조80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 대비 62%인데 이대로 두면 2020년에는 87%가 될 것이고 여기에 지방정부 부채까지 합하면 110%까지 올라갈 걸로 전망된다. 대책위의 안이 채택되었다면 2015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3%로 낮출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결국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베스트셀러였던 <검은 백조>의 저자 나심 탈레브 교수는 재정위기가 불거진 유럽의 상황이 차라리 미국보다 낫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유럽은 적어도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데 반해 미국은 손쉬운 구제금융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 연방정부는 유럽과 달리 국가 부채의 위험성을 모른 채 공공부채와 큰 정부에 중독돼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독일은 균형예산 조항을 헌법에 집어넣었고, 영국은 4년 목표로 강도 높은 예산개혁을 하고 있고, 프랑스도 난산 끝에 연금개혁에 성공했는데 미국은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재정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는 조처는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사태를 솔직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면 의외로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다. 레이건, 클린턴 대통령이 인기 없는 예산개혁을 추진했지만 당당히 재선된 전례가 있다. 눈앞의 인기만 계산하는 정치인들이 항상 문제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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