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지난 연말 두 차례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8년 동안 경제성장, 경제안정, 분배 개선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함으로써 퇴임 시 국민 지지도 87%라는 경이적 기록을 남겼다. 1945년 브라질 빈농의 8남매 중 일곱째로 출생해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다. 구두닦이를 하다가 금속공장에 취직했고, 노조에 가입해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사회주의자냐, 공산주의자냐고 물으면 ‘나는 금속노동자’라고 대답했다.
1970년대 철강노조위원장으로서 노동운동을 주도했고, 1986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 뒤 노동자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세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마침내 2002년 대선에서 승리,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하원에서 노동자당의 의석은 18%밖에 안 돼 좌파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좌우 타협적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정치구도 속에서 그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좌우를 뛰어넘는 유연한 경제, 외교정책을 구사했다. 좌파 대통령이 등장하자 외국자본이 브라질을 떠나고 증시가 곤두박질쳤으나 룰라는 외채를 상환하고 긴축정책을 펴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고 좌파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래서 일부 좌파로부터는 신자유주의 추종자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좌우를 포용하는 실용적 태도를 견지했지만 그렇다고 좌파적 견지를 버린 건 아니다. 2003년 1월 대통령으로서 처음 주재한 각료회의에서 룰라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대표적 정책이 ‘보우사 파밀리아’라고 하는 가족수당 제도다. 이 제도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예방주사를 맞는 것을 조건으로 아이 한 명당 매달 22레알(약 1만4000원)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전국의 1100만가구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았고, 룰라 집권 8년 동안 빈곤율이 30%에서 19%로 감소하고 소득불평등이 줄어든 것도 상당 부분 이 제도에 기인한다. 또 하나가 최저임금 인상이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4년 동안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집권 8년 동안 실제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2002년 월 200레알이던 최저임금은 현재 510레알이다.
룰라는 노무현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 자라온 이력과 철학이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개인적으로 룰라와의 짤막한 인연을 소개하고 싶다. 필자는 1994년 하버드대학에서 룰라 당시 대통령 후보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뒤 많은 질문이 쏟아졌는데, 직접 대답하거나 가끔 어려운 질문은 배석한 참모에게 대신 답하도록 했다. 배석한 참모들을 그림자 내각으로 소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005년 5월 룰라가 한국을 국빈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와 악수를 하며 하버드대학 강연을 들었다고 하자 그는 반갑다며 다가와 한번 더 악수를 청했다. 옆에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쳐다보던 모습이 기억난다. 앞으로 누가 한국의 룰라가 될지 학수고대해본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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