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전셋값이 100주 연속 상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40%인 세입자들이 겪는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고통이 더 심해졌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게을리한 것과 뉴타운 공약을 남발한 것이 전월세 상승을 부추겼다.( ▷전월세 상한제, 국회 문턱도 못밟고 무산될판) 민주당은 전월세 상승률을 연 5%로 제한하고 1회(2년)에 한해 기존 세입자들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주는 법안을 이미 제출해놓은 상태다. 전월세 상한제를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하던 한나라당조차 최근에는 전월세 급등지역을 ‘관리지역’, ‘신고지역’으로 지정·관리하겠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전월세 상한제는 일종의 집세 통제(rent control)인데 이것은 경제학자들에게 인기 없는 정책이다. 1990년 미국경제학회 회원들을 상대로 40개 명제에 대해 찬반 의견을 물었는데, 그중 하나가 집세 통제에 관한 것이었다. “집세 상한제는 세놓는 집의 양과 질을 떨어뜨린다”고 하는 명제에 대해 무려 93.5%의 경제학자가 동의를 표시해서 40개 명제 중 반대 의견 단연 1위에 올랐다. 왜 그럴까?
집세 통제의 역사는 전쟁과 관련이 있다. 유럽에서는 세계 1차대전 중 집세 통제가 처음 도입됐고, 미국에서는 2차대전 중 처음 도입됐다. 전쟁 때는 정부의 개입이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면 대부분의 정부 통제는 약효를 잃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미국 도시에서 집세 통제가 사라졌지만 유독 집세 통제를 유지한 도시가 뉴욕이다. 뉴욕에서는 집세 통제로 인해 세입자 상호 간의 불공평, 예를 들면 미아 패로 등 유명 배우들이 싼 집세의 혜택을 누리는 반면 정작 가난한 세입자들은 집을 못 구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집주인들은 집세가 낮으니 비싼 돈을 들여 집을 유지·보수하지 않으므로 집의 품질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래서 집세 통제를 하는 도시는 전반적으로 우중충하고 엉망이 돼버리는 부작용이 있다. ‘한 도시를 파괴하는 데 폭격 다음으로 좋은 수단은 집세 통제다’라는 금언이 있을 정도다. 최근 국내의 보수 연구소와 보수 학자들이 일제히 전월세 상한제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이런 사고방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집세 통제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반대는 전시의 경직적 집세 통제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새로 도입된 집세 통제는 과거처럼 경직적이지 않고 훨씬 융통성이 있다. 그래서 전시 집세 통제를 경성 집세 통제, 혹은 1세대 집세 통제라 부르고 그 뒤의 집세 통제를 연성 집세 통제, 혹은 2세대 집세 통제라 부른다. 전자는 문제가 많지만 후자는 충분히 권장할 만하다. 원래 임대주택 시장은 완전경쟁 시장과 거리가 멀고 정보의 비대칭, 힘의 비대칭 등 많은 결함이 있다. 이런 시장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정당하며, 특히 한국처럼 세입자들의 고통이 큰 나라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시장 만능주의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시장 원리를 외치지만 최저임금제, 이자상한제 등은 분명히 장점이 많다. 전월세 상한제도 마찬가지이므로 더욱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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