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배추값이 폭락해서 농민들이 울상이다. 최근 배추 한 포기 가격이 2500원까지 떨어져 예년 평균 3000원을 밑돌고 있다. 지난해 가을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2000원을 넘어 김치가 ‘금치’로 불리던 때를 생각하면 금석지감이 있다.( ▷배추 값 폭등의 경제학) 불과 반년 만에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현상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배추뿐만 아니라 양파, 마늘, 수박 등 각종 채소 가격이 폭락해서 분노한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거나 시위를 벌이고, 천금같은 농작물을 대량 폐기하는 일이 반복됐다. 민주당 송훈석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지난 5년간 채소값 파동으로 대파, 양파, 마늘, 배추 등을 산지에서 폐기한 물량은 무려 36만4000t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런 사태는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공황 때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자 미국에서 농산물과 우유, 치즈 등을 대량 폐기했다. 한쪽에서는 실업자들이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귀한 식품을 불태우고 바다에 빠뜨렸으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뒤에도 오렌지의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하자 캘리포니아 농민들이 오렌지를 대량으로 폐기했다. 넓은 벌판에 산더미 같은 오렌지가 방치된 채 썩어가는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농산물 가격은 왜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가? 그것은 농산물 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가격이 오를 때 공산품은 즉시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데 반해 농산물은 자연적 제약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 한참을 지나서야 공급이 반응을 하는데, 이번에는 공급과잉이 되기 쉽다. 지난해 가을에 배추값이 폭등하자 예상대로 올봄 배추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났고, 게다가 중국에서 수입하는 배추와 김치까지 더해져 공급 과잉이 빚어졌다. 그 결과가 배추값 폭락이다. 이처럼 농산물에서는 가격 등락 순환이 나타나기 쉽다. 이것을 수요, 공급 곡선으로 그리면 거미집 모양이 되므로 ‘거미집 이론’이라고 한다.
생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공급이 비탄력적인 재화에서는 농산물과 비슷한 거미집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 대학에는 학과별 정원이 없고, 학생들의 학과 선택이 자유다. 어떤 학과의 졸업생이 적으면 공급 부족으로 그 분야 종사자들의 연봉이 올라간다. 그러면 그 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수가 늘어난다. 몇 년 뒤에는 인력 과잉으로 몸값이 떨어진다. 그러면 그 분야에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 이리하여 미국에서는 8년(대학 4년의 두 배) 주기로 어떤 분야의 인력 수급과 몸값이 등락을 반복하는 순환 경향이 있다. 이 현상 역시 거미집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거미집 현상으로 매년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하고 따라서 농민 소득도 불안정하다. 농산물 수집을 밭떼기 상인들 손에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정부와 농협이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서 농민 소득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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