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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예금인출 사태

등록 2011-05-08 20:39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대출과 영업정지 직전 예금을 빼내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저축은행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다른 저축은행에도 불똥이 튀어 제일저축은행에서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제일저축은행에서는 지난 3일 600억원, 4일 1200억원, 6일 470억원 예금인출이 있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 말까지 영업정지를 당한 8개 저축은행을 제외한 96개 저축은행의 총수신액은 지난해 말보다 1조5000억원 줄어든 64조8000억원이라고 한다.

‘예금인출 사태’(bank run)는 은행의 지급능력을 불신하는 고객들이 돈을 찾으러 은행에 몰려오는 현상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은행은 낮은 금리로 유치한 예금을 높은 금리로 장기대출하여 그 차액을 버는 영리조직이다. 따라서 은행은 법으로 정한 최소한의 지급준비금만 보유한 채 대부분의 예금을 외부에 대출해 놓고 있다. 그러니 은행 고객들이 갑자기 예금을 찾으러 몰려오면 돈을 다 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평소에는 고객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 일은 없다. 자기 예금은 은행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뢰가 흔들리면 이번 저축은행처럼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진다.

은행은 신뢰의 산업이다. 고객의 신뢰가 있으면 잘 굴러가지만 한번 신뢰가 흔들리면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 고객의 신뢰라는 게 연기처럼 형태도 없고 불안정해서 조그만 소문에 흔들리기도 한다. 혹시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예측만으로도 그 예측이 실현되기도 한다. 이를 경제학자 로버트 머튼은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이름 붙였다. 동양에는 ‘의심은 암귀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예금인출 사태를 막기 위한 몇가지 조처가 있다. 고객들이 몰려와 장사진을 이루더라도 그 줄이 은행 밖으로까지 길게 이어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은행 홀은 큼직하게 지어져 있다. 사람들의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은행의 일시 휴업도 있다. 대공황 때 미국에서는 30개주에서 은행 휴업이 있었다. 중앙은행이 ‘최후의 대부자’로서 방패 노릇을 할 수도 있고, 은행예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제도도 있다. 미국은 대공황 때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나 무려 9000여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이를 막기 위해 1933년 연방예금보험공사를 설립해서 고객 1인당 한 은행에 2500달러까지 예금지급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했고, 지금은 그 액수가 25만달러로 늘어났다. 한국 역시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는데, 1인당 한 은행의 예금보장 액수는 5000만원이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로 감독당국의 부실한 감독이 비판받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의 고위 간부들이 퇴직뒤 각종 금융기관에 감사 등 요직으로 가는 소위 낙하산 인사가 화근이다. 규제를 받아야 할 조직이 규제하는 조직을 포획하는 이런 악습의 척결 없이는 은행 부실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낙하산 인사의 관행을 청산한다면 그나마 전화위복이라고 위안할 수 있을까?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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