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23돌> 2015년 매출 2조3천억 목표
“정치권 등에 한눈 팔지 말길”
“정치권 등에 한눈 팔지 말길”
휴맥스 사례는 여전히 국내에선 드문 ‘성공스토리’에 속한다. 대기업 계열사를 빼고 신생기업이 ‘매출 1조 클럽’에 올라선 이례적인 사례로 꼽히는 탓이다. 그간의 과정은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었다. 창업 이후 5년 동안 뚜렷한 전략이나 목표 없이 정부와 기업의 용역을 수행하며 회사를 이끌어오던 변대규(사진) 사장에게 1991년 내놓은 ‘피시용 영상처리보드’는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어떤 자세를 가져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 제품 설명서에 용도를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영상 위에 자막을 올릴 수 있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정작 소비자들의 문의는 이 부분에 집중됐다. 개발자 쪽에선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마지막에 집어넣었는데, 소비자는 이 기능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변 사장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94년 사업분야를 ‘디지털가전’으로 정했고, 첫 제품으로 가요반주기를 개발해 재미를 봤다. 현재의 주력제품인 셋톱박스 사업은 1995년 국내 한 대기업으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방송사가 디지털 위성 셋톱박스를 구매한다는데 도전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어려움 끝에 세계에서 3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셋톱박스를 개발했고, 1000만달러 수출 쾌거도 올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애초 수출 목표 대상으로 삼았던 오스트레일리아 방송사가 유럽의 대형 방송사에 합병돼 제품 공급 길이 막히고 외환위기로 국내 거래업체가 부도를 맞으면서, 동반 부도 위기로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휴맥스는 유럽의 대형 방송사를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무명의 한국 중소기업 제품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대형 업체들이 관심을 두지 않던 일반 유통시장으로 눈을 돌렸는데, 이게 바로 대박으로 이어졌다. 마치 ‘간을 보듯’ 소량 주문해간 유통업체들이 추가로 주문하는 사례가 늘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이후 휴맥스는 ‘포기와 집중’ 전략에 매달렸다. 다른 사업은 모두 포기하고 셋톱박스 수출에만 집중했고, 이를 통해 디지털 셋톱박스 한가지로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이뤄내는 성과를 냈다.
휴맥스는 올해 초 “미국 케이블 셋톱박스와 ‘카 인포테인먼트’ 사업에 도전해 2015년에는 매출을 2조3000억원으로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서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세계 3대 셋톱박스 메이커로 올라서고, 카 인포테인먼트 시장을 개척해 추가로 5000억원의 매출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산업의 변혁기를 이용해 기회를 포착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한 뒤 메인시장으로 발을 넓혀라. 늘 시장 가까이에 있고, 시장의 목소리에 신속하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라. 그리고 정치권이나 머니게임 쪽으로 절대 한눈을 팔지 말라.” 변 사장이 몸소 실천을 통해 후배 기업가들에게 던지는 교훈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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