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경제이야기
국립대 법인화 문제로 대학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대 교수, 직원, 학생들은 법인화에 반대해서 장기투쟁 중이고, 경북대 교수들은 지난주 법인화 찬반 투표에서 87%가 반대했다. 법인화를 해서 대학도 시장에 맡겨 경쟁을 시키고 교수들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국립대 법인화는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최초로 안을 만든 뒤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국회에서 서울대 법인화법이 상임위 토의도 생략한 채 의장 직권상정으로 날치기 통과되면서 비로소 실체를 갖게 됐다. 한 건 올린 정부는 지방 국립대로 법인화를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화는 모순 덩어리다. 법인화의 목적이 무엇인가. 국립대에 대한 정부 통제를 줄여 대학을 자율화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인화 이후 대학 이사회는 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등 외부 인사 중심으로 구성되고, 교육과부에서 상임감사까지 파견하니 대학의 자율은 결정적으로 훼손될 것이다. 법인화의 또다른 목적은 ‘작은 정부’로 가자는 것인데, 정부는 국립대에 대한 정부의 예산지원을 줄이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있으니 자가당착이다.
법인화 이후 대학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2004년 일본이 70개가 넘는 국립대를 일거에 법인화한 뒤 도쿄대, 교토대 등 국립대의 세계 대학순위가 일제히 후퇴했다. 교수들은 각종 보고서 쓰는 데 시간을 뺏겨 연구실적이 줄었고, 대학은 재정을 확충한다고 술, 빵, 화장품을 제조해서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 법인화를 하면 등록금이 인상되어 미친 등록금이 더 미칠 위험도 있다.
그뿐 아니다. 법인화를 하면 대학에서 문학, 역사,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이 말라죽을 위험이 있다. 기초학문은 시장에서 상품성은 없으나 모든 학문의 기초이므로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재화를 가리켜 공공재라 부르는데 국방, 사법제도, 등대, 가로등 같은 것이 대표적 공공재다. 공공재는 시장에 맡겨서는 공급이 안 되므로 정부가 세금을 걷어 직접 공급할 수밖에 없다. 국립대를 법인화해서 공공재인 기초학문이 고사하면 국가적 위기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국립대 법인화는 잘못이다. 오히려 한국 교육에서 너무 낮은 공공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할 때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한 민간지출은 과잉이고 공공지출은 과소하다. 그것이 심각한 등록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법인화는 역사의 퇴행이다. 날치기 통과된 서울대 법인화법은 폐기돼야 한다.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이 나더냐”는 <장한몽>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김중배(교과부)의 돈에 눈이 멀어 이수일(지방 국립대)을 배신한 심순애(서울대)는 이수일에게 돌아오라.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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