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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기본소득, 사회적 경제 등 새로운 분배 시스템 실험해야”

등록 2017-11-16 00:34수정 2017-11-16 19:47

[2017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프레카리아트 급증, 기본소득이 해답 VS.
임금인상과 차별시정 등 노동보호가 먼저
지역은 중앙정부 실패 보완하는 혁신 못자리
'일의 미래: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향하여'를 주제로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리더십'을 주제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안희정 충남도지사,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 산드라 폴라스키 전 국제노동기구 부총재, 데이비드 워커 <가디언 퍼블릭 리더스 네트워크> 편집위원, 민형배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일의 미래: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향하여'를 주제로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린 15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리더십'을 주제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안희정 충남도지사,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 산드라 폴라스키 전 국제노동기구 부총재, 데이비드 워커 <가디언 퍼블릭 리더스 네트워크> 편집위원, 민형배 광주광역시 광산구 구청장.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수십년간 진행되어왔고 최근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노동의 변화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갈수록 어려운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 수입이 안정된 평생직장이 희귀해지고 비정규직, 임시직, 플랫폼 노동 등 열악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소득 불평등과 격차가 커져 사회통합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15일 열린 제8회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이런 일자리 및 노동의 변화를 어떻게 진단하고, 국가 및 지자체가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할 수 있는지가 논의됐다. 관점이 다른 두 연사, 즉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와 샌드라 폴라스키 전 국제노동기구(ILO) 부총재가 특별강연을 한 뒤,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 주재로 민형배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데이비드 워커 <가디언 퍼블릭 리더스 네트워크> 편집위원이 함께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종합토론의 좌장을 맡은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종합토론의 좌장을 맡은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첫 강연에서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지대 자본주의’가 강화되고 자본가들과 대기업에 더 많은 소득이 분배되는 과정과 벼랑 끝으로 몰리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현실을 진단하며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런던대 교수이기도 한 스탠딩 대표는 “오늘날 자유시장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주의 체제는 길드(생산자 조합)의 붕괴, 국가 규제의 약화, 임금 하방 압력의 증대로 노동자 지위와 민주주의 기반까지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수입(세수)을 기업들에 보전해주고 법인세와 부유층 소득세를 깎아줌으로써 저소득층 복지와 사회서비스가 줄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자본소득이 크게 늘고 노동소득이 줄면서 소득분배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글로벌 노동계급이 형성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했다. 상층부터 엘리트-봉급생활자-연금생활자-프롤레타리아로 이어지는 전통적 계급보다도 밑에 있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이다. 프레카리아트는 오로지 자신의 노동소득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평생 ‘직업 불안정성’을 세뇌당하고, 삶에서 일의 가치를 못 느끼며, 자기계발은 생각도 못 한다. 그는 “프레카리아트는 역사상 매우 특수한 계급으로, 문화·사회·경제·정치적 시민권을 잃어버린 데다 어떤 정당도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않는다”며, 문제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스탠딩 대표는 “지대소득을 배분할 대안으로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사회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기본소득이 주어질 때 폭력이나 착취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확대되며, 여성과 노인 등 취약자를 돌볼 기회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강연에서 샌드라 폴라스키 전 국제노동기구(ILO) 부총재는 기본소득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임금인상과 노동보호 등 전통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노동소득 분배율 악화는 불평등을 심화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노동부 부차관을 지낸 그는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전체의 3분의 1로 매우 높지만, 노동자의 4분의 1은 저임금 상태인 데다 임금 격차도 심각하다”며, 한국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다섯 가지 개혁안을 제안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노동자 소득, 특히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까지 높여야 하며, 이는 국내수요 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시장에서의 차별도 없애야 지속가능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정부가 최저임금과 사회보장 등 법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노동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넷째, 노동소득 분배율을 높이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단체교섭권이 강화돼야 한다. 다섯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회보장률이 가장 낮은 편인데, 공공서비스 증대를 위해 조세정책을 바꿔야 한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기존 복지제도와의 상충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폴라스키 전 부총재는 모든 국민에게 제공하는 기본소득은 혜택보다 비용이 크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본소득을 제공한다는 것은 세금 높여야 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연금, 사회보장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연금이나 기존 사회보장 받고 있었던 사람이 오히려 혜택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형배 구청장은 시장임금(직장노동)과 사회임금(복지서비스)에 이어 기본소득이 사회가 함께 생산한 부의 나눔 메커니즘으로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고 임금소득의 증대를 주장하는 폴라스키 전 부총재의 입장에 동의한다”며 “다만 이는 분배의 고전적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고전적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것이고 그중 하나가 ‘기본소득’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분배 모델을 실험하는 데 있어 지자체의 개입과 역할 대한 논의도 있었다. 민 구청장은 위탁업체의 파산으로 해고 위기에 놓인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중간착취를 없앰으로써 구청에서 별다른 추가비용 부담 없이 이들의 급여를 25%가량 올린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자본대 노동’이라는 대립구조를 넘어선 기업 및 노동 결합체로서 ‘사회적 경제’ 또한 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워커 편집위원은 “지역이 혁신을 추구하는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있다”며중앙정부의 실패를 지방정부가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방법 통해 단기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의심 여지없이 지방정부 역할이 크다”며 영국은 그 일환으로 공공서비스의 아웃소싱을 중단하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금부담이 증가하는 문제는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지사는 “앞으로 어떤 시장가격도 민주주의와 시장이 공동으로 결정 해야 한다”라며 “새로운 프로카리아트의 출현은 지금의 민주주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에 관련된 문제는 한 국가만으로는 풀기 어려워서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와 한 국가 내의 민주주의가 발을 맞춰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용어풀이)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precario, 불안정한)’와 독일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무산 노동계급)’를 합성한 신조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일상적인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저숙련·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 등을 총칭한다.

청중들이 종합토론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청중들이 종합토론을 진지하게 듣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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