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간 지속된 업황 부진에 맞서왔던 성동조선해양이 결국 청산 위기에 내몰렸다. 생사의 기로는 법원의 손에 맡겨졌다. 한달간의 말미를 얻긴 했으나 에스티엑스(STX)조선 역시 전체의 40% 이상 인력 감축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책을 내놓지 않으면 성동조선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두달간 전문 컨설팅 회사를 통해 산업 생태적 측면, 회사부문별 경쟁력, 구조조정 및 사업재편 방안 등을 포함해 다양하고 밀도 있는 분석을 했다. 사용자 측, 노조, 전문가의 의견 수렴과정도 거쳤다. (그러나) 성동조선은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하고 에스티엑스조선은 한 달 내 고강도 자구노력을 담은 노사 확약을 맺지 못하면 원칙대로 처리한다”고 밝혔다.
두 회사의 자금줄은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잡고 있으나 최종 결정은 정부가 내렸다. 기업의 생사 여탈을 금융 논리뿐만 아니라 산업·고용 차원에서도 봐야 한다고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도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에 더 이상 돈을 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상남도 통영과 창원에 각각 터 잡은 성동조선과 에스티엑스조선이 부실의 늪에 빠져든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미국에서 불어온 금융위기에 물동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일감이 급감했다. 2000년대 들어 지속된 ‘호황’에 불려놓은 몸집은 난데없이 찾아온 ‘불황’에 큰 짐이 됐다. 매출이 급감하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성동조선은 2010년에, 에스티엑스조선은 2012년에 각각 자본금을 모두 까먹으며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에 목숨줄을 맡기는 처지가 됐다.
2016년부터는 정부까지 나섰다.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산업부 장관이 머리를 맞대는 ‘산업 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 단골 안건으로 ‘조선업 지원 방안’이 올라왔다. 채권단에 빌려준 빚을 탕감케 하고 더 많은 돈을 대라는 방침이 내려졌다. 두 회사에 들어간 채권단 자금이 10조원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창업자들은 경영권을, 직원들은 임금과 복지를 포기하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에스티엑스조선의 경우 2007년까지만 해도 2천명이 넘던 직원 수는 지난해 9월말 현재 1420명으로 줄었다.
성동조선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 은성수 행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해 수주받은 5척만 건조가 끝나면 도크에 배가 없고 유동성도 말라가 부도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에스티엑스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은 “컨설팅 회사에선 40%의 인력 감축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우리는 좀 더 추가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노사 간 확약을 맺지 못하면 성동조선과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두 회사가 경쟁력을 잃어 회생 가능성이 낮다는 시장의 판단은 이미 지난해 내려졌다. 한 예로 지난해 11월 한영회계법인은 성동조선에 대한 재무실사를 한 결과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3배 더 높다고 발표했다.
이런 결과에도 업계와 두 조선사의 직원들은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현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해온데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실세들이 두 회사가 터잡은 지역을 정치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도 지난해 12월 구조조정의 3대 원칙 중 하나로 ‘금융과 산업의 균형있는 고려’를 내세우며 이런 전망을 부추기기도 했다.
두 회사에 직접 고용된 직원만 2600명에 이른다. 실업급여가 충분치 않은 등 아직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상황에서 재취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실정을 염두에 두면, 직원들의 저항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반 첫 등장한 ‘해고는 곧 살인’이란 노동계의 구호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때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그 이후로도 이런 노동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두 조선사 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하겠다던 ‘사람이 먼저’라던 문재인 정부는 어디 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다시 머리띠를 매고, 조선산업을 파국으로 내모는 정부와 국책은행에 맞서 결연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락 정세라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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