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이 1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분야 데이터활용 및 정보보호를 위한 관련 협회와 기관 대표, 교수, 변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긴 통근시간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생산성도 약화시킨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얼마나 될까?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출퇴근 소요시간은 평균 58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8분)의 두배가 넘는다. 당시에는 직접 설문조사 방식으로 표본조사를 벌여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 통계청은 앞으로는 위치정보인 모바일통신 정보와 통계청이 보유한 인구·가구 정보, 고용정보 등을 결합하면 좀더 정확한 통근시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사람들이 몇시에 집을 떠나 직장에 얼마나 머무르고 언제 귀가하는지를 가구 특성별 혹은 소득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이처럼 국민생활에 밀착한 통계를 생산한다는 취지로, 연내 민간 데이터 활용을 강화하기 위한 통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통계청은 모바일통신 정보뿐 아니라 부채·신용등급 등 민간 금융정보와 통계청의 인구·가구·주택 정보를 연계하는 한편, 신용카드 지출내역을 활용한 새로운 경제통계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국가가 수집한 국민의 개인정보가 민간기업에 제공돼 영리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19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통계법을 개정해 민간기업의 데이터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통계법 개정은 민간기업에 민간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신설하고, 통계법 31조를 개정해 개인 식별 정보가 포함된 통계자료를 외부에 제공할 수 있도록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의 제3자 제공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뼈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통계청은 2016년 신혼부부 5만가구의 인구 데이터와 민간 신용정보회사의 부채·신용등급 정보 등을 연계한 분석을 시도한 바 있다. 남편과 아내 모두 신용등급이 3~4등급 이내인 경우가 46.7%에 달해 신혼부부의 대출상환 능력을 판단할 때 가구 단위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시사점이 도출됐다. 하지만 당시 민간데이터 활용은 법적 근거 없이 민간기업과 체결한 업무협약(MOU)에 따라 이뤄진 것이어서 시민단체의 비판이 뒤따랐고 더는 관련 업무가 추진되진 못했다.
앞으로 통계법 개정안이 마련돼 국회에서 심의될 경우, 국가가 수집한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기업에 의해 영리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은 데이터 연계를 민간기업이 수행하더라도 이 작업이 통계청 데이터센터 내의 통제된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고, 민간기업은 분석 결과만 집계표 형태로 반출할 수 있도록 하면 개인정보가 침해될 우려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제공한 민간기업이 얼마나 세부적인 집계표를 가져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통계청 한 관계자는 “반출된 분석값을 민간기업이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는 모르지만, 민간기업도 자신들이 얻는 이익이 있어야 자신들이 보유한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데이터를 제공하는 기업에는 자신들이 가져가는 공공데이터가 일종의 대가라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출퇴근 소요시간 데이터 연계에 협조한 통신사는 가입자의 소득 수준이나 가족 수, 직장이나 여가 활동에 대한 분석을 해 표적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고, 수익성 높은 새로운 요금제를 개발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위치정보 같은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가 정부 내에서 불법적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해 시행된 영국의 ‘디지털경제법’을 비롯해 대다수 선진국들은 공공이 보유한 데이터를 본래 목적 외에 활용할 때는 연구 목적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통계청이 수집하는 통계자료는 직접 조사한 자료들도 있지만, 납세자료나 고용보험, 주민등록부처럼 법률에 의거해 강제적으로 수집한 증거도 상당수다. 이는 국가가 다루는 개인정보가 공적으로 안전하게 활용될 것이란 암묵적 동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통계청 통계를 본래 목적 외에 쓸 때는 연구 목적으로만 제한해왔지만 2016년부터 이런 규제가 사라졌다.
따라서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보인권연구소의 이은우 변호사는 “국가와 기업이 국민의 개인정보를 자기들 것인 양 거래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며 “통계 작성을 위해 민간데이터와의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해당 데이터들의 연계가 타당한지, 과정은 적절한지 등을 외부의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에서 심의를 받고, 제3의 기관 등을 통해 수행하거나, 통계청이 이를 법률에 따라 직접 수집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황수경 통계청장은 “갈수록 개개인이 움직일 때마다 데이터가 쌓여가는 빅데이터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추세”라며 “빅데이터 활용의 장점과 개인정보 침해라는 단점이 충돌할 수 있는데, 이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아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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