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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감정원만 아는 ‘공시가격 깜깜이 산정’…16억 집 공시가는 8억

등록 2018-10-11 05:00수정 2018-10-11 11:46

못 믿을 부동산 지표
②공시가격

산정 가격 적정성 판단기준 없어
실거래가 4억원 넘게 뛰어도
공시가는 5천만원만 올리기도

감정원 ‘대량산정모형’ 사용하지만
가격책정 과정 전혀 알 수 없어
“공시비율도 투명하지 않아” 지적

조세저항·민원 의식한 정부
공시가격 낮게 조절해 왜곡 심화

전문가 “산정과정 투명화 시급”
아파트가 밀집한 모습.  자료 사진
아파트가 밀집한 모습. 자료 사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아파트(전용면적 114.3㎡)의 올해 2월 기준 실거래가격은 16억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1월 이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8억원으로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1주택자 기준 9억원 이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실거래가 반영률이 50%에 그치는 탓이다. 같은 단지에서 동일한 면적의 아파트가 지난해 6월 11억4천만원에 거래됐는데, 당시 공시가격은 7억4400만원이었다. 반년여 만에 실거래가는 5억원 가까이 뛰었지만 공시가격은 5600만원만 오르면서, 격차는 더 크게 벌어졌다.

올해 서울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실거래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공시가격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국토교통부는 앞으로 시세반영률을 높이겠다는 원칙론을 되뇌고 있지만, 정작 공시가격 개편을 위한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공시가격 산정 과정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고 투명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애초 취지와 달리 공시가격을 세부담 수준을 완만하게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써온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유형별로 크게 토지와 단독주택, 아파트 등 공동주택, 세 가지로 나뉜다. 토지의 경우 한국감정원이 전국 3309만필지 중 50만필지(2018년 기준)를 표준지로 선정한 뒤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해 공시지가를 평가하면, 지방자치단체가 표준지를 기준으로 나머지 개별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를 매긴다. 단독주택도 감정원이 전국 단독주택 418만호 중 22만호를 표준주택으로 선정해 직접 가격을 산정하고, 지자체가 표준주택을 기준으로 나머지 개별 주택에 대한 공시가격을 매긴다.

이에 비해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에 대해선 감정원이 직접 전국 1289만호의 가격을 전부 책정한다. 감정원은 부동산 가격을 책정할 때 대량산정모형을 쓴다. 아파트의 경우 표본이 되는 주택의 가격이 정해지면, 나머지 주택들은 층수, 면적 등 변수를 입력해 자동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그렇지만 이 과정 자체가 그야말로 ‘깜깜이’로 이뤄진다. 감정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를 활용해 시세를 평가하고 가격을 책정하는지, 가격이 시세를 얼마나 반영한 것인지, 그렇게 해서 산정된 가격은 적정한 수준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가격 책정 과정에서 임의적인 가격 할인이 이뤄지는 것도 공시가격과 시세의 괴리를 불러온다. 감정원은 주택의 시세를 조사한 뒤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영비율을 적용해 시장가치보다 할인된 가치로 산정가격을 책정한다. 정수연 제주대 교수(경제학)는 “감정원의 시세 책정과 반영 비율이 사실상 공시가격 수준을 암묵적으로 결정해왔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그 실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토지가 아닌 주택(단독주택·아파트 등)의 경우엔 이미 할인된 산정가격에 한번 더 공시비율 80%를 적용해 공시가격을 정한다. 시장가치와의 괴리가 더 커지는 것이다. 국토부 장관이 고시하는 업무요령에 따라 결정되는 공시비율은 법적 근거가 없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현행법상 공시가격의 개념은 시장가격이어야 하는데, 법령이 아닌 부처 세부지침으로 공시비율을 정해 실제보다 낮은 공시가격을 발표하는 건 법령의 위임범위를 벗어났고, 조세법률주의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공시가격 현실화의 기준이 돼야 할 ‘시세’에 대한 정의조차 불투명하다. 김현아 의원(자유한국당)은 지난 8월 국토부가 정기적으로 부동산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을 조사·공표하도록 의무화하는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토부 관계자는 “실거래가는 시세를 결정짓는 주요 참고지표지만, 편차가 크고, 허위 신고나 특수관계인끼리의 거래 등 부정확한 거래들이 포함돼 있어 그 실거래가 자체를 시세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모두가 납득할 만한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공시가격이 매겨져온 탓에 현실 가치와 점점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부동산학)는 “국토부 스스로 자신들이 책정하는 공시가격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결국 민원이나 조세저항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라며 “실거래가 데이터가 부족한 토지나 단독주택의 경우 아파트보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의 경우 평균적으로 실거래가의 60~70% 수준에서 공시가격이 책정되지만, 토지와 단독주택은 실거래가의 40~5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집값 급등기에는 이런 문제가 더 커진다. 참여연대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이뤄진 전체 아파트 실거래 사례를 분석한 결과, 2013년 72.5%였던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2014년 69.7%, 2015년 66.8%, 2016년 66.1%, 2017년 65.6%로 점점 떨어졌다. 이 기간 평균 실거래가격은 4억4239만원에서 지난해 5억9465만원으로 올랐다. 매년 아파트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일이 수년간 누적된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부동산의 적정한 가격 형성과 조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적정가격을 책정하겠다는 공시가격 제도의 애초 취지와 달리 조세 부담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공시가격 제도를 활용해온 측면이 있다. 집값 상승에 따른 세부담 증가가 조세저항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공시가격이 완만하게 오르도록 조절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실제로 그간 공시가격이 시세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국토부 고위 간부는 “가격 급등 지역의 상승률을 그대로 공시가격에 반영하면 세부담이 너무 급격하게 뛴다”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가격은 말 그대로 가격을 온전히 반영하고 세부담 수준은 세제를 통해 조절해야 하는데 정부가 조세저항이나 민원을 의식해 가격 자체를 조절한 탓에 공시가격 자체가 크게 왜곡돼 제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고 평했다.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은 공시가격을 ‘통상적인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으로 정의한다. 정상적인 시장가격이 공시가격이 돼야 하지만 정치적 고려가 작용해 가격이 왜곡됐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에 따라 공시가격 산정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세은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공시가격이 중장기적으로 시장가격을 100% 반영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현재는 어떤 기준으로 현실화하겠다는 건지 목표조차 불확실하다”며 “정부가 현실화의 기준,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공시가격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조사·산정·평가 방식과 근거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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