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하림·대림·금호 등 4개 그룹의 총수 일가가 계열사 부당 지원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얻은 혐의(사익편취)가 확인돼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공정위가 아직 조사 중인 삼성·에스케이(SK) 등 7개 그룹에 대한 제재도 내년에 본격화할 전망이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공정위와 태광·하림·대림·금호아시아나의 말을 종합하면, 공정위는 4개 그룹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혐의를 확인하고 그룹별로 심사보고서 송부 작업을 시작했다. 심사보고서는 공정위가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전원회의에 제재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로, 검찰의 공소장에 해당한다.
4개 그룹 중 일부는 공정위가 보낸 심사보고서를 이미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태광은 “최근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접수했다”며 “공정거래법상 3주 이내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어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태광은 이호진 전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휘슬링락 골프장 등이 만든 김치·와인 등을 다른 계열사들이 비싸게 사주고, 한국도서보급이 발행한 도서상품권을 계열사 직원들에게 복리후생 명목으로 나눠줘 부당이익을 안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정보기술(IT) 계열사 티시스는 매출 대부분을 계열사와의 내부거래가 차지해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그룹들도 곧 심사보고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아이디티(IDT) 등 7개 계열사와 자금·유가증권 거래를 하며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 부당지원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2015~2016년 금호홀딩스를 중심으로 그룹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 계열사인 아시아펀드가 금호홀딩스 출자자금 확보를 위해 발행한 회사채를 계열사인 아시아나세이버가 인수하고, 그룹 산하 2개 공익재단이 100% 지분을 보유한 케이에이(KA) 등 3개 회사가 금호홀딩스에 출자한 것도 부당지원 혐의를 받고 있다.
대림은 그룹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대림코퍼레이션과 에이플러스디 등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당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림은 지난 1월 총수 일가가 보유한 에이플러스디 지분 100%를 정리한 바 있다. 하림은 김홍국 회장이 아들 김준영씨에게 비상장 계열사 올품의 지분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사익편취 행위로 부당이익을 얻은 혐의가 있는 그룹 총수들에게는 출석요구서까지 보냈다. 금호아시아나는 박삼구 회장, 대림은 이해욱 부회장이 공정위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다고 확인했다. 공정위의 총수 출석요구는 통상 검찰 고발을 염두에 둔 절차여서 4개 그룹 총수가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될 가능성이 높다. 박 회장과 이 부회장은 모두 국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공정위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조사는 통상 2년 이상 걸리는데,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올해 1월 착수 이후 불과 10개월 만에 조사가 끝났다. 하림과 대림도 각각 지난해 7월과 9월 시작된 조사가 1년2개월~1년4개월 만에 끝났다. 태광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9월 조사가 시작됐다. 공정위 간부는 “문재인 정부가 총수 일가 사익편취 조사 등 대기업 정책을 전담하기 위해 기업집단국을 신설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제재는 심사보고서 발송부터 통상 2~3개월 걸리기 때문에 4개 그룹에 대한 제재는 내년 초부터 잇달아 이뤄질 전망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6월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하림을 시작으로 대림, 미래에셋, 금호아시아나, 한진, 한화, 아모레퍼시픽, 에스피씨(SPC), 삼성, 에스케이 등 10개 그룹의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10개 그룹의 사익편취 조사를 진행 중이며 내년에는 제재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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