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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폐암 말기였다는데…조양호는 왜 ‘경영권’ 고집했나

등록 2019-03-29 19:24수정 2019-04-08 15:36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오전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오전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연합뉴스
“내부에서도 이런 결과를 예상 못한 게 아니다.”

27일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 안건이 부결된 뒤 한진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침통하게 말했다. 조 회장에게 불리한 상황은 충분히 예견됐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했다. 세계적 의결권 자문사인 아이에스에스(ISS)도 반대를 권했다. 25%의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가운데 80% 이상이 따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주주들 의결권을 위임받는 ‘위임장 대결’로 힘을 보탰다. 주총 참석률 80%를 가정할 때 회사 정관상 조 회장 반대에 필요한 지분은 27%였다. 국민연금 지분(11.7%), 외국인 지분의 80%(19.8%), 시민단체 위임 지분(0.54%)을 합치면 32%로 이를 훌쩍 넘는다.

대한항공 임원은 “조 회장은 국민연금이 이사 연임에 찬성은 안 해도 최소 기권은 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기권했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하지만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위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불법행위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조 회장에게 찬성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인하는 일이다. 국민연금이 주총 전날 반대를 결정하는 순간 조 회장은 자진사퇴가 순리였다. 그 기회를 놓치면서 재벌 총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주주들에 의해 이사회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조 회장은 왜 이런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 “우리 현아가 무슨 잘못을 했나?” 조 회장이 2014년 말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태 직후 이승철 당시 전경련 부회장에게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은 조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회피하면서 비판 여론이 재벌 전체로 퍼지자 조 회장을 직접 만나 설득을 했다. 평소 대기업을 앞장서 옹호해온 이 부회장이지만 여론과 너무 동떨어진 조 회장의 인식에는 말문이 막혔다. 이어진 둘째 딸의 갑질, 부인의 폭행·폭언 논란도 이런 안이한 인식이 자초한 일이다.

조 회장 일가의 배임·횡령·밀수 등 불법행위도 드러났다. 국민의 분노는 폭발했지만, 조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문역할을 하는 한 인사는 “(조 회장은) 자신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한 일에 비하면) 너무 심하게 당한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다른 재벌(의 행태)도 (우리와) 비슷한데, 왜 우리만 갖고 그러냐”고 억울해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다른 임원들은 옆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 임원은 “표 대결은 위험하니 일단 사퇴하는 게 좋겠다는 건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회장이 표 대결을 결정한 뒤에는 그 누구도 토를 못 달았다. 사외이사들이 포함된 이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이사회의 면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가 드러난다. 사내이사 4명은 조 회장과 조원태 사장 부자와 전문경영인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5명 중 2명은 법무법인 광장의 변호사와 고문이다. 광장은 조 회장의 매형이 설립한 법무법인이다. 경제개혁연대의 이총희 회계사는 “회사 및 임원과 자문계약이나 법률대리를 해주는 법무법인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를 맡으면 독립성을 견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이사회의 다수를 거수기로 채운 것이다. 조 회장은 주총 뒤 “경영권을 계속 행사할 것”이라고 몽니를 부렸다. 주주의 뜻을 무시하고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29일 “달라진 게 없다”며 또다시 국민 여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무모함을 보였다. 외환위기 때 재벌의 ‘대마불사 신화’가 무너졌다. 20년이 흐른 지금 재벌 총수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던 ‘황제경영의 신화’가 무너졌다. 조 회장은 구시대적인 황제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하고도, 여전히 ‘황제놀음’에서 못 깨어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진솔한 반성과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게 더 큰 위기를 막는 길이다. “회장은 왕이 아니고, 기업은 왕국이 아니다”라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곽정수 산업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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