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 사이의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2심(최종심)을 승리로 이끈 정하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이 4월 2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접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구슬을 다시 꿴 게 제 역할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를 둘러싼 세계무역기구(WTO) 소송 2심(최종심)에서 예상을 깨고 역전승을 끌어낸 실무 주역 정하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은 “(다툼의) 틀을 바꾸고 구슬을 다시 꿴 것이었을 뿐이고, 힘들게 그 구슬 하나하나를 만든 건 1심 대응팀이었다”고 말했다. 1심 대응 단계에서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잘 못 해 패소한 것을 2심 팀에서 반전시켰다는 식의 인식은 맞지 않고 1심에 제출된 자료와 2심의 판정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정하늘 과장과 인터뷰한 것은 세계무역기구 상소 기구가 1심(작년 2월)을 깨고 한국 승소 판정을 내린 지 2주가량 뒤인 4월 25일이었다. 정 과장은 2심 대응을 준비한 22명 팀의 팀장이었다. 2심 판정 뒤 반색(한국)과 탄식(일본)이 엇갈리며 달아올랐던 흥분은 가라앉고 있지만,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쪽은 2심 판정이 법률적 판단일 뿐이라며 수산물 수입 제한의 완화·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때맞춘 듯 세계무역기구의 개혁 필요성을 제기해 분쟁 패소에 분풀이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인터뷰 이튿날 기자와 만난 주한 일본대사관의 공사인 니시나가 토모후미 경제부장은 “많은 국가가 일본 수산물 수입 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고 있는데, 한국은 왜 그렇게 못하는지에 대해 정부 간에 많은 얘기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들 2심에선 진다고 했는데, 승소의 핵심 배경은?
“1심에서 왜 졌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1심은 사실심이기도 했지만, 에스피에스(SPS·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 분쟁의 특성상 과학자들 간 승부이기도 했다. 1심에서 일본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2년 이상 참여해 준비한 자료와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치밀한 주장을 펼쳤다. 특히 자체 조사뿐 아니라 방사능 관련 국제기구의 객관적 조사 자료를 증거로 제시한 점이 뼈 아팠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자료를 준비하고 과학적 논리를 만들어 대응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1심에 참여한 과학자와 변호사, 담당 공무원들이 100차례 이상 회의를 하고 수없이 밤을 새우면서 어떻게든 자료를 만들고 논리를 새워서 대응했다. 결국 이때 만들어진 자료 중 패널(1심)이 인정한 내용이 2심 승소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이분들이야말로 수훈갑이라고 할 수도 있다. 2심 결과가 나온 뒤에 이분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1심 때 대응을 제대로 안 했고, 잘 못 했다는 식의 오해를 받았다.”
―지금도 그런 인식이 좀 있는 듯하다.
“2심 대응하면서도 그 과학자분들한테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코덱스(CODEX)의 전설’로 불리는 알랜 랜델(Alan Randell) 박사, 원자력 전문가 찰스 피터슨 고문 같은 외국 전문가들의 의견도 받았다. 우리 쪽 전문성 떨어지지 않지만, 제3국의 권위자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결과는 병가지상사다. 1심 대응 때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헛되지 않았다. (논리 싸움의) 틀을 바꾼 상소심에서 판단의 근거가 됐다.”
―1심(패널심)과 2심(상소심)의 판단의 방식이 달라 결과가 엇갈린 것인가?
“패널심은 사실심, 상소심은 법률심이다. 세계무역기구는 법리를 중요시한다. 국제기구 한계 탓이다. 패널이든, 상소 기구든 법률적으로 치열하게 다툰다. 그게 기본이다. 1, 2심 갈린 부분은 사실관계 아니고, 법리적인 것이었다.
2심에서 진다는 관측 많았던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우선 세계무역기구 에스피에스 분쟁에서 피소국이 이긴 적이 없다. 또 하나, 사실심(1심)에서 최악의 판단이 나왔다. 일본산 식품의 ‘위해성’(risk·유해성(hazard) 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피해를 볼 수 있는 정도) 검토 결과, 위험하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왔다. 과학자들이 일본산 식품의 샘플을 조사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이 일본산을 차별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차별이라고 판정한 것이었다. 제3국과 한국산에 적용하고 있는 세슘 기준치를 똑같이 적용하면 되는데, 일본산에는 추가로 방사성 ‘핵종’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게 특히 문제였다. 세슘이 미량만 검출되면 추가 핵종 검사를 하니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검출된 일본산 식품은 사실상 수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추가 핵종검사는 수산물뿐 아니라 모든 일본산 식품에 적용하고 있다. 이건 사실상의 전면 금수조치라고 일본 쪽이 주장했고, 일본산 식품에 대해서만 이런 조치를 적용하는 건 차별이라고 1심에서 판단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소심 들어갔다. 사실관계가 압도적으로 안 좋았기 때문에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많이들 봤던 것이고, 그런 추론은 비합리적이지 않았다.”
―본인 생각도 마찬가지였나?
“법리적으로는 승산이 있다고 봤다. 1심에선 ‘환경 대 식품’ 대비해서 봤다. 우리는 일본의 ‘환경’이 위험하다고 본 것이고, 일본은 ‘식품’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물을 떠다 파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자극적인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은유적이고 세련된 변론이었다. ‘환경을 파는 게 아니라 식품을 파는 것이다’라는. 그런 상황에서 이 틀을 바꾸는 쪽으로 접근해야 했다. 패널이 잘못된 틀을 적용한 것을 파기하는 쪽으로 대응 방향을 잡고, 잠재 위험을 관리하는 게 우리 조치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사실관계를 주장하는 건 의미 없는 단계였고, 제소의 대상이 된 우리 조치의 메커니즘을 법리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미 제출된 사실관계를 갖고 다시 보여주는 게 핵심이라 봤고, 이 방향이 맞겠다고 확신했다.”
―그런 판단의 실마리, 이유는?
“일본이 제소를 하면서 근거 법 조문을 넣어야 할 조항을 뺀 게 있다. 에스피에스 협정 2.2조다. (수입제한) 조치와 과학적 증거 간의 합리적 상관관계를 따지는 게 이 조항의 핵심 법리다. 일본이 이를 누락했다. 중재나 소송 때 제소국은 주장이 무엇이고, 근거 조항은 뭐라고 찍어줘야 한다. (제소 전) 양자 협의할 때는 일본이 2.2조를 거론했는데, 분쟁 단계에서 이걸 뺐다. 상소심 단계에 들어갔을 때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일본은 왜 그 조항을 뺐을까?
“왜 뺐는지는 추정의 영역이다. 다만, 그게 빠져서 한국의 조치와, 일본 내 오염환경 간 합리적 관계가 패널의 심리 대상이 안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일본 나름의) 소송 전략적인 설계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분쟁의 틀을 바꾸는 데 상관관계를 부각해야겠다는 확신을 준 부분이었다. 식품 자체의 위험을 다투는 것으로는 승산이 낮다고 봤다. 일본산 식품에 위해성이 낮다는 사실심 판단이 나온 상황에서, 현존 위험이라고 하면 이기기 어렵고 잠재 위험을 부각해야 했다.”
―1심에서도 그 틀로 접근할 수는 없었을까?
“사실심에서 법률심으로 넘어가면 쟁점이 보이지만, 1심은 망라하여 대응할 수밖에 없다. 1심 심리 중에는 판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 도리가 없다. 2심 단계에선 1심 판정이 나와 있으니 법률적 오류를 파고들 수 있지만, 1심은 럭비공과 같다. 판정부가 어떻게 갈지 모르고, 상대방도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1심에선 우리 쪽 서면 제출 기간도 짧았다. 일본은 2~3년 준비해서 소장을 제출했다. 우린 그걸 받고 난 뒤 대응해야 했다. 통상 피소국 쪽 대응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소송단에 합류한 시점은?
“2심 대응이 시작된 직후인 작년 4월이었다.”
―정부에 특채된 건 순전히 이번 소송을 위한 것이었나?
“아니다. 한국이 당사자가 된 모든 세계무역기구 분쟁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 들어왔다. 현재 일본산 수산물 분쟁 외에도 무역기구 분쟁이 8건 더 있다. 물론 수산물 분쟁이 제일 중요했다. 작년 4월 16일 부임 첫날 오전 세종시 청사에서 인수·인계받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서 그날 밤 비행기로 (스위스) 제네바(세계무역기구 본부가 있는)로 갔다. 주변에 인사를 돌 시간에 수산물 분쟁에 집중하라는 조직 차원의 배려였다. 덕분에 비록 1심은 끝난 상태였지만, 수산물 분쟁 상소심이 부임 1년 차의 핵심 과제라 인식했다.”
―정부 밖에 있을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나?
“자세히는 안 봤고, 어려운 사건이란 생각은 했다.”
―제네바 호텔에서 같이 묵으면서 2심 대응한 이들 1심 때와 구성 많이 달랐는가?
“22명 중 저 빼고는 1심 때와 대체로 동일했다. 과학자, 변호사, 공무원들로 이뤄진 민관 합동팀이었다.”
―제네바로 떠날 때 심정은?
“어려운 사건이지만, 이겨보고 싶은 생각도 강했다. 결과를 예측했다는 건 말이 안 되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초기부터 했다. 1심 구슬들을 다르게 꿰어보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희망의 실마리는?
“단계별로 조금씩 높아졌다. 부임 초기에는 20~30% 승산 있겠다고 생각했고, 논리를 발전시키고 증거를 정리하는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승산이 차츰 올라갔다. 패널 판정에 법리적으로 공격할 여지가 있었다. 사실관계 안 좋아도, 틀을 바꿀 수 있다면 승산 있다고 본 것이다. 틀을 바꾸기 위한 필요한 구슬이 적시에 잘 찾아져 결국 이렇게 된 것 같다.”
―국제 분쟁 체계는 통산 2심 체계인가?
“대부분 단심제다. 상소심을 두는 세계무역기구의 두 단계 절차는 예외에 가깝다. 이번에 상소심의 실효성이 증명된 것이라 본다. 2심의 구두심리가 끝난 뒤 고민을 좀 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 절차가 법률심이긴 하지만, 이렇게 복잡하고 사실관계 안 좋은 상황에서조차 순전히 법리대로 판단해줄지, 걱정됐다. 법률심으로선 세계 최고권위인 세계무역기구의 상소 기구가 권위에 걸맞은 판단을 내려줬다. 존경한다.”
―국제기구라는 게 대개 강대국 이해관계에 쏠려 있는 것 아닌가?
“통계적으로 그렇지 않다. 제소국의 승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유는? 오래 준비할 수 있고, 승산이 높은 사건만 제소할 수 있으니까.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 사정도 비슷하다. 대개 제소국 90% 이기고, 피소국 90% 진다. 다만, 각국의 소승 대응능력에 따라 약간 차이는 난다. 일본의 승률이 좀 높다. 사전 준비를 잘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최종심에서 패소한 소식을 1면에 보도한 일본 주요 신문들. <연합뉴스>
―상품 자체의 위해성과 환경의 위해성의 차이를 다시 쉽게 설명한다면?
“지금까지 식품과 관련된 에스피에스 판례를 보면 주로 살충제, 첨가물이 문제 된 것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식품에 대한 검사를 통해 환경적 영향까지 볼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다. 이번 상소 기구 판정에서도 식품검사를 통해 환경적 영향을 모두 알 수 있다면 식품 중심 검사를 하는 게 잘못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시가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방사능이 문제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방사능은 살충제나 첨가물과 달리 사람이 주입하는 게 아니고 환경에 의해 투입되는 것이다. 식품 자체의 현존 위험 외에 잠재 위험을 봐야 한다. 지금까지 먹은 생태가 멀쩡하다고 해도 여전히 오염된 생태가 들어올 위험은 잠재해 있고, 우리 조치는 그걸 관리하는 게 목적이다. 고성민 사무관(산업부)이 식약처의 다른 사무관과 함께 1심에서 제출된 증거자료 중 중요한 실마리를 찾아냈다. 세슘과 스트론튬 간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였다. 덕분에 일본의 경우 환경이 아직 안정화돼 있지 않아 세슘과 스트론튬 비율 관계가 일반적인 과학적 계산 식과 달리 산출됨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일본 수산물이 다른 핵종에 오염됐을 수 있고, 일본의 특수 상황 때문에 세슘 검사만으로 다른 핵종의 수준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면 한국으로선 다른 핵종들을 추가로 검사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할 수 있었다.”
―세슘이 많이 검출되면, 다른 핵종들도 많이 검출된다는 것인가?
“세슘이 얼마 나오면 다른 핵종들도 얼마 나오는지 계산되는 과학적, 정합적 관계가 있는데, 일본에선 그게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불안하고, 불안하니 추가 검사로 관리해야 하고, 그런 관리 체계가 이번에 국제기구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식품에 현재 발현된 위험만 봐선 곤란하고 잠재적 위해성을 관리하는 게 우리 조치였고, 식품만 보는 건 법률적으로 오류라고 주장해 관철한 것이다.”
―에스피에스 분쟁에서 방사능 관련은 첫 사례라니 의미가 클 것 같다.
“다른 사례에 적용될 기념비적 사건이라 본다. 오염원이 방사능이 아니고 첨가물이나 살충제였다면 패널 판정의 논리가 틀리지 않는다. 상소 기구는 법리적으로 봤을 때 환경이 식품에 영향을 미치는 한, 환경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적절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일본이 50여 개국 수입 금지국 중 유일하게 우리만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다. 짐작되는 바 있는가?
“추정보다 팩트로 말할 수밖에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한국서 일본산 수입을 금지했다. 이때는 일본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2013년 오염수 추가 유출 당시 우리만 추가 조처를 했다(대만은 2015년 추가 조치). 또 우리만 추가핵종 검사를 했다. 수입금지만을 제소 이유로 삼은 건 아니었다. 세슘이 미량이라도 나오면 엄격한 추가 핵종 검사를 하니 그것 자체가 수출에 너무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제소를 한 것이다. 이건 수출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일본 쪽 주장이었다.”
―감정적 대응이거나 한국을 본보기로 삼은 게 아니라는 얘기인가?
“우리의 조치가 가장 강하니까 상대적으로 이기기 쉽다고 봤을 거다. 그 판정을 갖고 다른 나라들에 얘기할 생각이었을 것이고.”
―이미 결론 난 상태인데 일본은 수입 재개하라는 주장을 계속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양자 협의는 외교적 사안이다. 분쟁은 사법적 문제이고, 다른 차원이다. 소송담당자로서 양자협의요청에 대해 뭐라 말할 입장에 있지 않다. 다만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선택한 것도 일본이고, 1심 판정 후 한국에 이를 무겁게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 것도 일본이다. 국제 관계에서 일본이 갖는 위상을 고려할 때 결국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리라 믿는다.
―1, 2심 진행 과정은 대략 어땠는가?
“패널심에선 구두변론 2번, 서면 제출은 여러 번 이뤄졌다. 상소심에선 구두심 1회, 상소 이유서 제출 1회였다.”
―상소 이유서가 중요했나?
“구두변론, 상소 이유서 둘 다 중요하다. 상소 이유서가 쟁송의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이고, 재판관이 정말 궁금한 핵심사항은 구두심에서 논박한다.”
―구두변론은 얼마나 길게 진행됐는가?
“하루에 8시간씩 이틀 진행했다. 저 혼자 아니고, 1심부터 참여한 변호사들과 같이했다. 저는 냉정하게 봤다. 법률심이기도 했고. 기술적으로 접근해 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1심부터 참여한 이들에겐 ‘영혼을 갈아 넣은 사건’이다. 사건에 대한 애착이 더 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드러나는 게 부담스러웠다.”
―1심 때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는데.
“1심이든 2심이든, 모든 분쟁에서 결과는 병가지상사다. 재판관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결과론만으로는 대응이 얼마나 충실했는지 말할 수 없다. 소송담당자가 논리나 접근방법에서 더 잘할 여지는 늘 있는 것이다. 1심 결과 안 좋았지만, 패널 판정에 포함된 과학적 근거들이 2심에서 충분히 활용됐다. 1심에서 제기한 법리적 주장들도 모두 상소심에서 우리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귀중한 토대가 되었다. 구슬을 다시 꿴 게 제 역할이었다. 구슬 하나하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건 1심 대응팀이었다.”
kimyb@hani.co.kr
정하늘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 백소아 기자
통상 전문 미국 변호사…지난해 산업부 특채
정하늘 과장은?
미국 뉴욕 주립대(철학, 법·정치 철학), 일리노이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미국 변호사이며 통상법 전문가로 꼽힌다. 해군 청해부대 2진 법무참모, 합동참모본부 국제법 담당(해군법무장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선임 외국변호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4월 국제통상분쟁 대응을 위한 산업통상자원부의 특별채용 공모에 응해 통상분쟁대응과장에 발탁됐다. 법무법인 시절에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을 포함해 다양한 국제 분쟁, 국제거래 업무를 주로 처리했다.
인터뷰 동안 개인사에 대한 언급은 꺼렸다. 법률적, 기술적 부분에 대한 설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개인사가 부각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반응이었다. 팀 단위로 이뤄진 소송 대응이 개인 공으로 치부되는 게 부담스러운 듯했다. 산업부 대변인실을 통해 잠정적으로 잡았던 인터뷰 일정이 한 차례 무산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새로 들은 개인사라고는 중·고등학교를 국내에서 검정고시로 마쳤다는 것, 통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정도였다. “일반 국제법은 미묘한 정치 역학관계에서 구속력을 담보 받는 예민한 것임에 반해, 국제통상법에선 체제 그 자체에서 구속력이 담보돼 약소국이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다. 국제 관계에서 좋은 작용을 할 수 있는 비밀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찍부터 국제법에 관심을 두었고 통상 문제에 흥미를 느껴 로스쿨 시절 따로 공부를 많이 했던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