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첫 회의에서 김지형 위원장(오른쪽)이 이인용 삼성 시아르(CR·Corporate Relations) 담당 사장(왼쪽) 등 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의 내부 준법감시위원회가 5일 첫 모임을 갖고 6시간에 걸친 마라톤 논의 뒤 회의 결과를 공개했으나 ‘노조 이메일 삭제’ 등 당장 사회적 비판이 이는 현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감시위는 이날 회의 뒤 낸 보도자료를 통해 “합병과 기업 공개를 포함해 관계사와 특수관계인 사이 이뤄지는 각종 거래와 조직 변경 등에 대해 감시위가 보고를 받고 자료 제출을 요구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운영 규정을 정했다고 밝혔다. 감시위는 또 “관계사 최고경영진이 준법 의무를 위반할 위험이 있다고 인지했을 때 이사회에 직접 위험을 고지하는 등 의견을 제시하고 관계사 준법지원인 등으로 하여금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권한을 정했다고 밝혔다. 관계사가 감시위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관계사 준법감시인 등의 임명이나 해임에 관한 승인 권한을 갖는 이사회에 감시위가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하고 ‘감시위 요구사항 거부’를 홈페이지에 공표하기로 했다고 감시위는 덧붙였다.
감시위는 이날 회의 일정을 사전 공지하고 위원들이 모인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인 김지형 전 대법관과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고계현 소비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 봉욱 변호사(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6명의 외부 인사가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인사에서 시아르(CR·Corporate Relations) 담당 사장으로 일선에 복귀한 이인용 사장도 내부 위원으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사옥에서 오후 3시에 시작돼 밤 9시께 끝났다. 저녁을 거른 채 6시간의 ‘마라톤’ 회의가 진행됐으나 주로 계열사들의 보고를 받는 데 시간이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노동조합 가입 홍보 이메일을 삭제하는 등 ‘노조 탄압’ 이슈가 발생한 데 대해 이날 회의에서 논의가 있었으나 보도자료에는 거론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심리중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오는 14일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감시위 활동을 살펴볼 전문심리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재판부는 감시위 활동을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이번 재판의 전문심리위 위원으로 추천했다. 삼성 쪽도 재판부의 제안에 따라 김경수 전 고검장을 추천했다. 반면 특별검사팀은 재판부의 전문심리위원 제도 도입은 “내용과 절차상 모두 적법하지 않다”며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이 부회장의 회삿돈 횡령 및 뇌물 공여 혐의에 유죄를 선고하며 범행이 이 부회장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대가성이었다고 판단하면서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실형 가능성이 높아진 바 있다. 그런데 재판부가 이처럼 ‘양형 참작’ 카드를 꺼내고 삼성이 이에 호응하면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국회 여야 의원 43명과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앞서 공동성명을 내어 “재판부가 감시위를 명분으로 이 부회장의 구명에 나선다면 또 다른 사법농단과 ‘법경유착’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수 양형 감경용’ 비판에 대해 이날 감시위 관계자는 “양형 문제는 우리가 다룰 이슈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감시위의 다음 회의는 이 부회장의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기 전날인 오는 13일에 열릴 예정이다.
송경화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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