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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뉴스AS] ‘모험자본’ 대표격이었던 사모펀드, 편법판매에 로비 의혹까지

등록 2020-10-21 04:59수정 2022-08-18 15:47

[뉴스AS] ‘금융 지뢰밭’ 사모펀드 어땠길래
5년전 규제완화, 사모펀드운용사 난립
10개뿐이던 전문사모운용사 20배 늘어
최소 투자 1억으로 낮춰 개미들도 진입

투자자 49명 이하로 꾸리는 사모펀드
같은 펀드를 여러개로 나눠 ‘꼼수 판매’
정치권 인맥 내세워 영업…로비설까지
은행·증권사는 ‘옥석’ 안 가린채 팔기만

시장 급격히 커졌지만 금융감독 손 놔
지난해부터 줄줄이 환매 중단 사태
라임·옵티머스 등 불법 민낯 드러나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 피해자들이 지난 2월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판매사로부터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대신증권의 사죄와 피해금액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 사태 피해자들이 지난 2월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판매사로부터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했다며 대신증권의 사죄와 피해금액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사장님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다녔다.” 라임자산운용의 전성기였던 2018년 당시를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워낙 수익률이 좋아 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는 뜻이다. 지금은 1조5천억원이 넘는 돈이 환매 중단되고 경영진도 기소됐지만 당시만 해도 ‘과감하고 혁신적 투자로 성과를 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들어 ‘사모펀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요 사모펀드가 잇따라 환매 중단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은데다, 최근에는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정치권 로비 의혹까지 불거졌기 때문이다. 소수끼리 비밀리에 운영한다는 사모펀드가 어떻게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됐을까.

어떻게 만들어지고 판매되나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에는 사모펀드와 공모펀드가 있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를 49명 이하로 비공개 모집한다.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50명 이상의 투자자를 공개모집한다. 또한 사모펀드는 최소 3억원 이상(현재 기준)을 투자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벌거나(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주식·채권·부동산 등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전문투자형 사모펀드). 공모펀드는 한 종목에 일정 비율 이상 투자할 수 없는 등 규제가 촘촘하지만, 사모펀드는 그럴 의무가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큰 수익을 추구하는 이들의 다양한 ‘금융 실험’의 장이 됐다.

펀드를 설계하고 운용하는 주체는 자산운용사다. 크게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를 함께 운용하는 ‘공모운용사’와 사모펀드만 운용하는 ‘전문사모운용사’로 나뉜다. 이번에 사고가 터진 옵티머스, 라임 등은 모두 전문사모운용사다. 대개 직원이 10명 안팎으로 작고 영세해 전국에 자산가 네트워크를 둔 은행과 증권사에 판매를 맡긴다. 이런 구조를 잘 모르는 투자자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 대형 금융사 직원의 권유로 가입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긴 뒤에 자산운용사 상품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투자 피해자들이 “은행 상품인 줄 알았다”, “증권사 직원 추천으로 가입했다”고 항의하는 이유다.

규제완화에 운용사들 우후죽순

국내 사모펀드는 2015년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육성책 아래 성장했다. 자본시장 역동성을 끌어올리고 기업 간 인수합병(M&A) 시장과 중소기업 투자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에서다. 지금은 라임 유동성 위기의 원흉으로 꼽히는 코스닥 기업 주식관련사채(전환사채, 교환사채 등) 투자도 당시엔 중소기업 민간자금 유입을 촉진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으로 여겨졌다. 금융당국은 전문사모운용사 설립 제도를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자기자본 요건도 6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다시 10억원으로 거듭 낮췄다. 전문사모운용사는 2014년 10곳에서 2019년 217곳으로 20배 늘어났다. 같은 기간 공모 자산운용사는 76곳에서 75곳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신생 업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편법·불법 운용도 같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규정대로라면 환매가 중단되더라도 피해자가 한 펀드당 49명에 그쳐야 한하지만 현재 피해자들은 한 펀드당 수백명에 이른다. 자산운용사들이 사실상 같은 사모펀드를 여러 개로 나누어 파는 식으로 공모펀드만큼 몸집을 키운 탓이다. 라임펀드의 경우 무역금융 매출채권이나 코스닥 주식 관련 사채 등에 직접 투자하는 모펀드를 설정하고 그 아래 수백개의 자펀드를 만들어 사실상 공모펀드와 같은 대규모 펀드를 만들었다. 모자 펀드 구조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소규모 펀드를 살릴 목적으로 허용된 제도인데 라임이 이를 사모펀드의 공모펀드화에 이용한 것이다.

투자자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금융당국은 최소 투자금액 요건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투자 권유 전 투자자 재산 상황과 투자 경험 등을 의무적으로 파악하는 ‘적합성·적정성 원칙’을 면제했다. 이에 따라 “전 재산을 투자하거나 대출을 받아 금액 요건을 맞추는 투자자들”(2019년 12월 금융감독원 조사)도 심심찮게 나왔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사모펀드에 설정된 원본액(펀드에 투자된 자금)은 2014년 173조원에서 2019년 412조원으로 급증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초창기엔 ‘사모펀드 육성해서 금융의 삼성전자 한 번 만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아마 그때 정부는 판매사들이 설마 이렇게까지 부실 판매를 할 거라거나(디엘에스·디엘에프 사태 등) 운용사들이 이렇게까지 시장 규율을 대놓고 어길 거라고는(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예상을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업계가 일종의 ‘평판 위험’을 고려해 시장 규율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취지다.

실력보다 인맥이 중요?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자산운용사의 정치권이나 정권에 대한 ‘로비설’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뚜렷한 운용 성과가 없는 자산운용사 상품을 판매사들이 적극적으로 팔아주거나 공공기관이나 주요 기업이 투자하는 사례가 등장하면서 그 ‘배후’에 의혹의 눈길이 쏠린 것이다. 2017년 설립과 동시에 아이비케이(IBK)은행을 통해 사모펀드를 판 장하성 주중대사 동생 장하원씨의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나, 업계 내 존재감이 미미했는데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등 공공기관 투자를 받은 옵티머스운용이 이런 의심을 받았다.

자산운용업에 10년 몸담은 한 관계자는 “실제 로비를 했든 하지 않았든 자산운용사가 영업 과정에서 정권과의 인맥을 과시할 유인은 충분하다”며 “운용 성과를 체계적으로 검증할 만큼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내세워 투자 유치를 받는 게 더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운용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국회의원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운용한다는 금융상품은 대체로 운용 성과와 상관없이 돈이 몰리더라”며 “투자자도 정치권과의 연줄로 금융상품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고 운용사도 이를 알고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부풀려 상품을 파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간 금융당국의 감독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금감원의 전문사모운용사 검사 건수는 2016년 10건(전체 사모운용사의 11%), 2017년 11건(7.9%), 2018년 13건(7.7%), 2019년 11건(5.2%)으로 연간 20~30건 검사받는 공모펀드와 견줘 절반가량 낮았다. 또 금감원은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10월 자산운용사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주요 사모펀드를 조사했지만 눈에 띄는 조처를 하지는 않았다. ‘의도적 봐주기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았고 단지 사모펀드 전반을 다 돌아보기에 금감원 인력과 수단이 제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짧았던 전성기…다시 규제 강화됐지만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와 올해 주요 사모펀드가 줄줄이 환매 중단되면서 업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라임자산운용은 부실 펀드의 자산을 멀쩡한 다른 펀드 자금으로 사들이며 수익이 계속 나는 것처럼 포장했고 옵티머스자산운용은 아예 보유하지 않은 자산을 내세워 투자 자금을 끌어모은 뒤 부실 사모사채에 투자하거나 부동산 개발에 썼다. 펀드 만기가 돌아올 땐 옵티머스가 운용하는 다른 펀드 투자금을 끌어와 사모사채를 상환하고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돌려주는 ‘펀드 돌려막기’를 했다.

사모펀드를 판매하는 은행과 증권사들의 ‘옥석 가리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케이비(KB)증권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장애인 주택 임대사업 관련 펀드는 현지 투자사가 몰래 아파트 대신 토지를 매입하고 문서를 위조한 사실을 알게 돼 부실 실사 의혹이 제기됐다.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디엘에스(DLS)를 판 은행들은 내부 위험관리부서에서 ‘국채 금리가 꾸준히 하락 중이라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듣고도 자산운용사의 테스트 결과를 그대로 따랐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증권사 등 대형 판매사들이 운용 경력을 충분히 쌓은 자산운용사를 엄선해 고객에게 판매하는 데 반해, 한국은 판매사들이 위험관리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신생 전문사모운용사 상품을 개인투자자에게 권유해 대규모 환매 중단의 한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다시 사모펀드 규제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자산운용사의 자기자본 미달(부실) 여부를 판단하는 주기를 연 1회에서 1개월에 1회로 대폭 늘리고 6개월 유예기간 안에 관련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등록을 말소하기로 했다. 판매사와 수탁사, 헤지펀드 전담 중개업자에게는 펀드 운용을 감시·관리할 책임을 부과했고 일반투자자의 최소 투자금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렸다.

류혁선 카이스트 교수(경영공학부)는 “자기자본보다 많은 돈을 맡는 운용사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가능성이 늘 있기 때문에 운용사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며 “(운용사) 내부통제 실효성을 높이려면 자본시장법상 ‘업무 소홀로 인한 금융투자업자와 관련 임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준법감시책임자까지 폭넓게 해석하거나, 상호저축은행법상 과점주주에게 연대책임을 지우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 하다”고 덧붙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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