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의 한 시중 은행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26일 금융위원회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방안이 공개되자 금융권에서는 전반적으로 예상했던 수준이거나 그보다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서인데, 최근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전세자금대출은 ‘실수요 보호’ 명분에 밀려 대책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상환능력을 따져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방식이 고소득자보다는 저소득자에게 더 큰 충격을 준다는 불만도 나온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는 레버리지 투자 행태가 심화하고 있다”며 “정부가 문제의 핵심을 방치하게 됐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고, 정부가 집값 안정화에 의지가 없다는 불신을 일으켜 고위험 투자가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2016년 36조원에서 올해 9월말 156조원으로 5년 만에 333% 급증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취임 이후 ‘가계부채 저승사자’를 자임하며 전세자금대출도 손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실수요자를 보호하라”고 언급하면서 결국 전세대출 규제는 포기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일정을 앞당겼으니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는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정부의 보증이 들어가는 전세자금대출·공적 모기지는 은행 입장에선 무위험 수익이므로 은행이 계속 대출을 늘릴 유인이 있다”며 “정부의 보증비율을 낮추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내년 금융회사 대출 총량관리에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할 계획이며, 디에스아르 적용, 보증한도·비율 조정, 고가주택 전세 규제 등을 계속 검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내년에는 금융권 대출 증가율을 올해(6%대)보다 낮은 4~5%대로 관리하고, 이번 대책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디에스아르 기준 강화 등 추가 대책을 펴겠다고 했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대책이 저소득층에 더 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디에스아르 규제비율이 똑같은 40%라고 해도, 연봉에 따른 실제 한도 차이는 크다. 연소득 8천만원인 사람은 연간 원리금상환액 32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연소득 3천만원인 사람은 연간 원리금 상환액 1200만원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분양을 받을 때 디에스아르 40% 허들로 인해 저소득층의 대출 문턱이 더 높아지게 되고 대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서민들이 집을 사려할 때 대출이 어려워지니 전세값이 올라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대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총대출 2억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굉장히 크다”며 “빚을 많이 낸 사람들이 추가 대출을 받을 때 애로가 있고, 실수요자가 대출할 때는 소득 범위에서 충분한 대출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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