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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코코본드 ‘차환 없는 조기 상환’ 잇달아 금융당국 골머리

등록 2023-03-28 17:46수정 2023-03-28 17:56

크레디스위스 전경. AFP 연합뉴스
크레디스위스 전경. AFP 연합뉴스

금융회사의 자본으로 인정되는 ‘신종자본증권’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보험업계에 이어 은행권에서도 자본비율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조기상환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탓이다. 특히 은행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자본규제가 본래 취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바젤3 기준서를 보면, 채권이 은행의 기타기본자본(AT1)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은행 입장에서 상환할 유인이 없는 영구채여야 한다. 정해진 만기가 없다고 해도 조기상환하지 않을 경우 이자가 더 비싸지는 등 상환 유인이 있으면, 영구성이 없다고 보고 자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영구성을 띠는 채권을 ‘신종자본증권’이라고 하고, 여기에 위기 시 주식전환·상각 조건까지 붙어 있으면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라고도 부른다.

현실에서 코코본드 등 신종자본증권의 영구성이 구현되는 방식은 좀 더 복잡하다. 은행이 조기상환을 아예 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 본 신종자본증권의 매력도가 떨어져 은행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탓이다. 이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통상 5년마다 차환발행과 조기상환(콜옵션 행사)을 동시에 진행하는 식으로 타협점을 찾고 있다. 새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조기상환을 하면 자본적정성에 별다른 변화가 없기 때문에 바젤3 규제도 이를 허용한다.

문제는 시장 상황이 나쁠 때는 은행이 ‘차환 없는 상환’에 나설 유인이 생겨 영구성이 휘발된다는 점이다. 조기상환을 거부하면 투자자들이 이를 위기 신호로 인식하고, 그렇다고 차환발행을 하자니 투자 심리가 위축돼 있어 금리를 확 높이지 않는 이상 투자자 모집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조기상환을 거부하면 해당 은행을 두고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나 채권 투매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신종자본증권이 현실에서는 바젤3 규제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5년 만기 채권처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는 ‘차환 없는 상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다음달 코코본드 1350억원어치의 조기상환을 차환발행 없이 진행한다. 소폭이지만 자본비율이 악화하는 리스크를 감수한 셈이다. 우리은행도 다음달 5000억원어치를 차환발행 없이 상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흥국생명보험이 5억달러어치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하면서 지급여력(RBC)비율이 규제 수준 밑으로 떨어진 바 있다. 한화생명보험도 다음달 ‘차환 없는 상환’을 진행한다.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은행들이 발행하는 코코본드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의 손실 흡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위기 시에는 재무제표에서 사라지는 자본이 손실을 흡수할 수 있을 리 없는 탓이다. 최근에는 은행권을 둘러싼 불안이 가신 뒤에는 은행 건전성 규제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의 개입 방향을 둘러싼 딜레마도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당장 투자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차환 없는 상환’이 유리할 수 있으나, 이는 자본의 질 강화라는 근본적 과제와는 상충할 여지가 있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신종자본증권의 실질적 만기를 5년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탓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금융당국의 주도로 흥국생명의 조기상환이 이뤄졌지만, 호주 금융당국은 반대로 콜옵션 행사에 신중하라는 메시지를 낸 바 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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