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상황에서 주택 구입이나 ‘대출 갈아타기'가 필요한 실수요자를 위한 정책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이 출시된 지난 1월30일 오후 서울시내 SC제일은행 한 지점 외벽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공사는 업무를 수행할 때) 서민층의 주택 구입 등을 우선적으로 지원하여야 한다.”(한국주택금융공사법 22조)
특례보금자리론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론’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법 취지와 달리 고소득층의 ‘내 집 마련’에 대규모 정책자금이 동원된데다, 최근에는 가계부채 증가세의 주범으로도 지목되고 있는 탓이다. 금융당국도 뒤늦게 정책 기조를 선회하고 있다.
16일 금융위원회 설명을 들으면, 금융위가 지난 1월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당시 내세웠던 취지는 모두 세가지다. 서민·실수요층의 주택 구입 지원과 대환대출(변동금리→고정금리)을 통한 가계부채 질 개선, 전세 세입자의 이주 지원이다. 상품의 이용 목적을 신규 주택 구입과 기존 대출 상환, 임차보증금 반환 등 세가지로 정한 배경이다.
이 중에서 신청자의 소득 요건을 없애는 명분이 된 건 고정금리 비중 확대다. 한국 가계대출의 높은 변동금리 비중은 금리 상승기에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돼왔다. 이형주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소득과 상관없이 차주들이 변동금리가 아닌 고정금리를 선택할 만한 유인을 줘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환대출보다 신규 대출 비중이 훨씬 높았다는 점이다. 1~7월 특례보금자리론 유효신청액 중 신규 주택 구입 목적의 비중은 59%인 반면 대환대출은 34%에 그쳤다.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꿔준다는 금융위의 명분과는 거리가 있는 결과다. 게다가 이 정책상품은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국면에 돌입하면 변동금리 상품으로 갈아타는 소비자가 급증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가계부채 질을 개선하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꼽히는 가계부채 규모만 키운 꼴이란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금융위도 부랴부랴 기조 선회에 나섰다. 이달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공급 규모를 제한하기 위한 추가 조처도 검토 중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례보금자리론) 때문에 부채가 늘어난 건 맞다”며 “금리는 시장금리 등을 고려해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미 30조원 넘게 시장에 풀린 만큼 이들 조처의 실효성은 두고 봐야 할 전망이다.
결국 정책 실패에 대한 금융위 책임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손실을 보면서 고소득층을 지원하면, 정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주금공에 추가 출자하거나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줄여야 한다. 이는 주금공법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금융당국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정책자금을 고소득층에 지원해왔는데, 그렇게 하는 게 옳은지 한번 되짚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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