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한 은행에 걸린 특례보금자리론 안내걸개 옆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저금리 혜택을 준 특례보금자리론의 23%가 연소득 9천만원이 넘는 고소득층에게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소득 7천만원 초과로 범위를 넓히면 그 비중이 40%를 넘는다. 서민층의 주거 안정 지원을 위해 설립한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고소득층에 정책자금을 지원해 아파트값을 떠받치고 가계부채 확대를 주도한 셈이다.
16일 주택금융공사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31일까지 들어온 특례보금자리론 유효신청액 31조1285억원 중에서 7조2116억원(23%)이 세전 연소득 9천만원을 초과하는 신청자에 해당했다. 이들의 56%(4조90억원)가 신규주택 구매를 목적으로 하는 대출이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서울 지역의 새 아파트를 사는 데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신청액의 31%(9조7764억원)가 주택 가격 6억원 초과∼9억원 이하인 경우에 해당했다. 이런 현상은 정부가 소득제한 요건을 없앨 때부터 예견됐다. 금융위원회는 가계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 상승기에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 된다며 집 한채를 갖고 있더라도 기존 대출을 갚는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신규대출도 소득제한을 없앴다. 주택 가격이 9억원 이하 면 소득과 상관없이 5억원 한도까지 대출 가능하 고 ,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적용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소득 요건을 없앤 명분은 고정금리 비중 확대였는데 실제로는 대환대출보다 신규대출 비중이 훨씬 높았다. 1∼7월 특례보금자리론 유효신청액 중 신규주택 구매 목적의 비중은 59%지만, 대환대출은 34%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주도해 가계부채만 키운 꼴이 됐다.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넉달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와 주택금융공사는 이달 11일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아직 남은 재원 8조원도 고소득자의 신규주택 매입 지원에 주로 쓰이게 되는 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택금융공사가 손실을 보면 정부가 추가 출자를 하거나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줄여야 한다. 현재의 특례보금자리론은 공사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고 분배 정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서민 주택 구매 지원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도록 당장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 부동산 떠받치기 정책도 그만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