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사기극으로 충격을 주고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부실채권→공공기관 채권’ 바꿔치기는 단 2개의 서류를 보내는 것으로 ‘완전범죄’가 됐다. 자본시장 시스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6일 입수한 옵티머스운용 부실채권 관련 3가지 문건을 보면, 이들은 수탁기관인 하나은행과 사무관리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이 분리돼 관리가 허술한 점을 십분 활용해 사기극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10일 옵티머스는 펀드 재산을 보관·관리하는 하나은행에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아트리파라다이스의 사모사채에 17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니 매수하라는 운용지시가 담긴 인수계약서를 보낸다.
그러면서 이날 기준가 산정 등 펀드 재산평가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 예탁결제원에 이 사채를 등록해달라는 공문을 이메일로 보낸다. 그
런데 놀랍게도 옵티머스는 메일에서 버젓이 ‘아트리파라다이스’ 사채를 ‘부산광역시매출채권, 한국토지주택매출채권, 국민행복주택매출채권’으로 이름을 바꿔 등록해달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첨부파일에는 아트리파라다이스 인수계약서가 첨부돼 있었는데도 예탁원은 옵티머스의 요청을 그대로 따랐다. 아트리파라다이스는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경기도 용인에서 스포츠클럽 등을 운영하는 직원 50명의 부동산서비스업체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달 불안감을 느낀 일부 투자자가 운용사에 요청해 확인한 펀드자산명세서에는 실제로 매수한 아트리파라다이스 채권이 아닌 국민행복주택매출채권 등 3가지 공공기관 채권으로 둔갑돼 3.9%의 수익률로 정상 운용되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 사기극은 옵티머스가 스스로 일부 펀드에 대해 상환 연기 방침을 판매사에 통보한 뒤에서야 종착역을 향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증권사들이 옵티머스 사무실을 방문해 실제 투자한 자산이 대부업체 등의 사채라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제로금리 시대에 안전한 공공기관의 채권에 투자하면 연 3% 정도 수익이 가능하다는 옵티머스의 홍보에 기관과 개인의 자금이 몰렸다. 지난 5월 말 기준 옵티머스 사모펀드 설정 잔액은 5172억원으로 이 가운데 환매가 중단된 규모는 1000억원을 넘는다.
문제는 사모자산운용사가 마음만 먹으면 실제 투자자산과 장부상 자산을 달리해 투자자는 물론 판매 증권사와 수탁은행, 공공기관을 모두 속일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자본시장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예탁결제원은 씨피엔에스 등 대부업체의 채권 인수계약서가 첨부된 메일을 받고도 역시 확인하지 않은채 옵티머스가 요청한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등록했다. 금융투자회사의 영업 및 업무에 관한 규정을 보면, 사무관리회사는 매달 수탁회사와 증권 보유내역을 비교해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증빙자료를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예탁원이 하나은행과 펀드의 자산보유내역을 비교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법에서는 이 규정을 ‘투자회사’(뮤추얼펀드)에 적용하는데, 옵티머스 펀드는 이와 다른 ‘투자신탁’(일반펀드)으로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나은행은 옵티머스가 비상장회사의 부실 사모사채를 100% 편입했는데도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와 관련된 채권’이라는 애초의 펀드 약관과 달라진 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운용방향이 약관에 어긋나면 수탁은행이 이를 확인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 다만 2015년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에 대해선 수탁사의 이러한 감시의무를 면제해준터라 이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