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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지갑 속 2만3천원

등록 2021-12-25 09:10수정 2021-12-25 14:07

[한겨레S] 다음주의 질문
10월25일 발생한 케이티 통신장애 여파로 혼란스러운 광주의 한 건강검진센터. 연합뉴스
10월25일 발생한 케이티 통신장애 여파로 혼란스러운 광주의 한 건강검진센터. 연합뉴스

“현금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점심 식사 뒤 카드를 내밀자 식당 주인이 난처한 표정으로 묻는다. 카드 결제가 안 된단다. 일행이 갖고 있던 현금을 다 털었으나 4천원이 모자랐다. “다음에 올 때 드리겠다”고 하고 나왔다. 인터넷 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한 ‘그날’(10월25일)이었다.

두달이 지난 시점에 그날 경험을 다시 꺼낸 이유는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탓인지 ‘디지털 전환 가속화’ 목소리가 부쩍 크게 들려서다. 2002년 인터넷 대란과 2018년 서울 아현동 통신구 화재 때에 이어 이번에도 경험했듯이, 이동통신·인터넷이 장애를 일으키면 국가가 마비되고 사람들의 삶이 멈춘다.

통신사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통신·인터넷 장애는 지금도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장애 시간이 짧거나 국지적이어서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원인도 통신망 운용자 실수, 네트워크 장비 오류, 해킹 공격, 통신구 화재, 포크레인 운전자 실수로 통신 케이블 절단 등 다양하다. 국내외 통신망 모두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 ‘인공지능(AI) 강국 육성’ 같은 구호 못지않게 이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게 분명하다. 어찌해야 할까. 한 통신사 임원은 “밥 먹고 카드 결제할 때, 병원에 있을 때, 택시나 버스를 탈 때,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중요한 자료를 공유해야 할 때, 행정복지센터를 들를 때, 통신·인터넷 장애가 일어나는 ‘재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게 들리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우선은 당연한 얘기지만, 장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장애 발생 때에는 철저한 손해 보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통신사들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통신망 고도화·안정화 및 장애 발생 예방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통신사 쪽에 기울어져 있는 통신·인터넷 장애에 따른 이용자 보상 잣대도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슬기로운 디지털 세상 살기’도 강구돼야 한다. 그날 이후 나는 집을 나설 때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는 ‘짓’을 한다. 지갑 대신 사용하는 명함집에 현금 ‘2만3천원’ 이상이 꽂혀 있는지를 꼭 확인한다. 적거나 없으면 보충한 뒤 집을 나선다. 그날 경험을 계기 삼아 나름 대비하는 거다. 1만원권 2장은 점심값, 1천원권 3장은 버스나 지하철 승차용이다.

중요한 건 ‘현금 2만3천원 갖고 다니기’의 적절성이 아니라, 이를 통해 통신·인터넷이 언제든지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늘 인식하며 살고 있는 점이다. 국가기관·정부기관·지방자치단체·기업·병원·자영업자 등도 통신·인터넷 장애 시 시민·국민·손님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비책을 나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요구할 자격도 생긴다. 그날 음식값 4천원을 덜 낸 게 찜찜해 다시 찾아가 현금 꽂힌 명함집을 보여주자 주인은 “그렇잖아도 계좌·전화번호가 명시된 명함을 준비하려 한다”며 “카드나 간편결제가 안 될 때 이 명함을 건네며 ‘나중에 여기로 보내주거나 또 들를 때 주세요’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외치는 사람들도 나름 생각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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