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사이버 가수는 아담이다. 1998년 아담은 타이틀곡 <세상에 없는 사랑>으로 데뷔했다. 당시 20만장 음반을 판매하면서 3개월 만에 5억원 넘는 매출을 올려 주목받았다. 아담은 2집에서 댄스가수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모습을 감추었다. 여성 사이버 가수 루시아도 같은 해에 데뷔했다. 한 정치인이 유세 과정에서 루시아와 가상 인터뷰를 가질 정도로 초반 관심을 끌었지만 어느새 모두 조용히 사라졌다. 막대한 비용이 실패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루시아는 20대 여성의 얼굴 석고를 직접 떠서 만들었다고 하니 당시 기술의 한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사이버 가수 아담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가상 아이돌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넷마블의 자회사인 메타버스엔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함께 만든 가상 걸그룹 메이브는 MBC <쇼!음악방송> 프로그램에서 지난 1월 데뷔했다. 메이브 뮤직비디오는 공개하자마자 2주도 지나지 않아 조회수 1천만회를 돌파했으며 현재 2500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전세계 수많은 메이브 팬들은 메이브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챌린지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최초의 사이버 가수 아담과 메이브의 기술 차이는 엄청나다. 아담의 노래는 사람이 직접 불렀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아담의 노래를 불렀던 가수가 출연해 화제였다. 메이브는 다르다. 메이브를 만들어낸 메타버스엔터 관계자에 따르면, 자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800개의 기본 표정과 사람 목소리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과정을 거쳐 메이브만의 독특한 표정과 목소리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신이 아담과 이브를 만든 것처럼 기술로 메이브를 만들어낸 것이다.
메이브의 매니지먼트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맡았다. 메이브의 디지털 싱글 <판도라스 박스>는 세븐틴·레드벨벳 등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가 만들었고 뮤직비디오는 아이유·에스파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팀에서 맡았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초호화 군단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메이브는 가상 인물이다보니 만화·게임 영역에서 지식재산권(IP) 활용도도 무궁하다. 메이브의 멤버 제나는 넷마블 피시 게임 ‘파라곤: 디 오버프라임’의 캐릭터로 등장했고 한국에 불시착한 메이브 멤버들이 아이돌 오디션에 참가해 걸그룹이 되고 미래를 바꾸는 전사로 성장해 나가는 판타지 요소가 첨가된 웹툰이 연재되고 있다.
가상 아이돌의 특징은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과거 학폭·마약·스캔들 등 일탈행위로 소속사나 다른 멤버에게 피해를 끼칠 일이 없다. 물론 실제 아이돌을 직접 만났을 때 주는 감동이 없고, 학습된 내용이 아니면 엉뚱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인간 아이돌에 비해 오프라인 활동이 아직은 10분의 1 수준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가상 아이돌의 한계를 머지않아 뛰어넘을 것이다.
무한복제 가능한 가상 아이돌은 영화 <그녀>의 사만다처럼 내 곁에서 늘 고민을 들어주고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부르게 될 것이다. 개인화로 몰입감을 주는 가상 아이돌이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은 인간 아이돌보다 가상 아이돌에 더 열광할까? 그 미래가 궁금하다.
강현숙 사단법인 코드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