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약사들을 대상으로 ‘전문직의 미래’를 주제로 얘기했다. 강의가 약사들 업무시간을 고려해 밤 9시 넘어 시작한다는 것도 특징이었지만, “우리 약사회 회원들이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많이 불안해하니 희망의 메시지를 꼭 포함해달라”는 주최 쪽 요청도 이채로웠다.
그럴 만한 상황이다. 올해 1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인공지능·로봇의 일자리 대체 가능성 조사’에서 2025년 직업별 인공지능·로봇의 대체 가능성에서 약사는 68.3%로, 미래가 암울하게 예측됐다. 미국에서는 샌프란시스코대학병원 등 조제로봇이 투입된 곳이 많고, 국내에서도 삼성서울병원에 자동조제로봇 아포테카 케모가 2015년 투입돼 암환자의 약을 조제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도 인공지능이 뛰어들었다. 글로벌 제약사인 미국 화이자, 머크 등은 신약 개발에 들이는 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화학적 합성과 임상시험을 시뮬레이션과 데이터로 대체하는데 효과가 뛰어나다.
병원용 조제로봇 기업 윌라치가 판매하고 있는 자동조제 솔루션.
그런데 지난 7월 마감된 2018학년도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원서접수 결과 약사에 대한 높은 인기가 확인됐다. 최종 지원자 1만6192명이 몰려, 전국 35개 약대의 정원(1693명) 대비 9.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경쟁률인데, 생물·화학 전공 등 자연계뿐 아니라 공대생들까지도 약대 입학에 뛰어드는 추세다.
현 종사자들은 불안해하는데 약사가 되려는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언뜻 보기에 역설적인 상황이다. 취업난 시대의 일상적인 모습일 수 있지만 대학생들의 약대 진학 열기가 궁금했다. ‘왜 대학생들이 약대로 몰려드는가’ 물었더니 몇 가지 답변이 제시됐다. “거대한 물결이 밀려와도 자신은 예외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어느 분야나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자격증이 있으면 안심되지 않을까요?” “아마도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 부모의 희망이거나 집안의 영향이 클 겁니다.”
불안할수록 우리는 구체적인 무엇에 의존하려고 한다. 하지만 미래학 연구자들은 특정한 자격증이나 지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태도가 어리석은 시도라고 말한다.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인데, 미래에 특정한 자격증이 유망할 것이라고 현재 기준으로 대비하려는 시도는 대개 무용한 결과로 이어졌다. 자격증에 의존한 직업 대부분이 과거와 다른 미래를 만날 것은 분명하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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