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 오후 사랑제일교회와 자유연대 등의 주관으로 열린 정부·여당 규탄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세종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통신사들이 가입자들의 휴대전화 위치확인 정보(기지국 접속기록)를 몰래 축적해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집회가 열린 8월15일 광화문 인근 기지국 접속자 명단을 질병관리본부(중앙방역대책본부)에 넘기는 과정도 이통사별로 제각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민감한 개인정보인 휴대전화 위치확인 정보의 축적 과정이 베일에 가려졌던 데 이어 사후 관리와 활용 절차마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6일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기지국 접속기록 관련 자료를 보면, 에스케이텔레콤(SKT)은 광화문 집회 당시 인근 기지국 접속자 명단을 지난달 19일 경찰청을 경유해 질본에 넘겼다. 반면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는 경찰청을 통하지 않고 직접 질본에 전달했다. 기지국 접속기록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작성된 기지국 접속자 명단이 사업자마다 다른 절차와 경로로 질본에 제공된 것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18일 경찰청에 보낸 공문 일부. 8월15일 집회 관련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찰청이 18일 이동통신 3사에 보낸 공문. 8월15일 집회 당시 인근 기지국 접속자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찰청이 18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보낸 공문. 기지국 접속자 정보 제출 요청을 이통사들이 법 조문 해석을 달리하며 거부했다며 직접 요청하라고 밝히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찰청이 1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보낸 공문. SKT에서 제공받은, 8월15일 집회 당시 인근 기지국 접속자 명단을 회신하다고 밝히고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질본은 지난달 18일 경찰청을 통해 이동통신 3사에 광화문 집회 당시 인근 기지국에 접속된 적 있는 가입자 명단을 요청한 바 있다. 질본은 경찰청에 보낸 공문에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76조 2(정보제공 요청 및 정보확인 등) 규정에 따라 아래와 같이 자료를 요청하니 감염병 확산 위험 등 시급성을 감안하여 다음 요청 자료를 빠른시일 내에 회신해달라”고 밝혔고, 경찰청은 이를 근거로 3사에 공문을 보내 명단 제공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3사의 첫 반응은 ‘경찰청 경유 방식의 자료 제공은 거부’였다. 경찰청이 질본에 회신한 문서를 보면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통신 3사에 ‘8월15일 광화문 인근 휴대폰 기지국 접속자 정보’에 대한 자료 제공을 요청하였으나, 통신 3사 모두 정보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회신했다. 케이티의 경우 ‘접속자 명단은 인적사항에 대한 정보로, 감염병 예방법 76조의2 제1항에 해당한다. 법령에 따라 중앙방역대책본부 측에서 직접 요청 공문을 보내달라’는 내용으로 회신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튿날 에스케이텔레콤이 입장을 바꿔 기지국 접속자 명단을 경찰청을 통해 제공하면서 결국 명단은 사업자별로 제각각 방식으로 질본에 전달됐다. 이통사들마다 감염병 예방법의 질본 협조 절차 조항을 임의적으로 해석한 데 따른 결과다. 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는 “중간에 ‘경찰청을 경유해 제공하는 게 맞다’는 쪽으로 법 해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기지국 접속기록 축적 과정은 물론이려니와 정보의 사후 관리도 허술하게 이뤄지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배준영 의원은 “통신사들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국가기관에 감청과 통신사실확인자료·통신자료 제공 등을 협조한 내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보고돼 7년 보관하게 돼 있는 반면,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질본에 제공된 기지국 접속자 내역은 보관 의무 조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도 “이통사들이 기지국 접속기록을 언제부터, 어떤 근거로,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축적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고객 개인정보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며 “가입자들이 기지국 접속기록 축적 및 활용 내역을 열람할 수 있게 하는 등 개인정보 주체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장치가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