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4일 전라북도 부안군과 고창군 사이에 위치한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풍력발전기 모습.
‘풍력발전 시장을 잡아라.’
기업들이 풍력발전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관련 업체 인수·합병과 합작사업 발표가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 ‘리파워 이유(EU)’ 등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쏟아지고 글로벌 대형 자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풍력발전 비중이 전체 발전량의 약 0.5%에 불과한 국내 시장도 그 초입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 SK에코플랜트, 삼강엠앤티 인수
지난 4일 에스케이(SK)에코플랜트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제조업체 삼강엠앤티를 인수했다. 삼강엠앤티는 2008년 코스닥에 상장한 업체로, 지난해까지 누적 수주액 1조36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해상 풍력발전 쪽에서 올렸다. 지난해 매출액은 5030억원으로 전년 대비 17% 늘었다. 유진투자증권은 “해상풍력 구조물의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진입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에스케이에코플랜트가 (삼강엠앤티를) 인수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활성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에스케이에코플랜트가 유럽 부유식 해상풍력 엔지니어링 협력업체들의 협력 제안을 받은 삼강엠앤티 기술력을 토대로 풍력발전 하부구조물 제작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에스케이에코플랜트 관계자는 “터빈은 주로 해외기업이 제조하고 있다. (삼강엠앤티 인수로) 기존에 해오던 풍력발전 단지 개발·건설 인허가 등에 하부구조물 제조까지 할 수 있게 됐다. 밸류체인의 상당부분을 완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 합작 통해 새 사업기회 모색 흐름도
국내 기업이 국외 기업과 합작을 통해 해상풍력 시장에서 새 사업 기회를 엿보는 흐름도 있다. 세계 1위 풍력 타워 제조업체 씨에스(CS)윈드는 덴마크의 세계 풍력 터빈 1위 업체 베스타스와 합작법인(JV) 설립을 추진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독일 지멘스가메사와 해상풍력 시스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양해각서를 맺었다. 지에스(GS)글로벌 플랜트·에너지 기자재 자회사 지에스엔텍은 네덜란드의 하부구조물 분야 세계 1위 시프와 손잡고, 하부구조물 제작 핵심기술 독점 사용권을 획득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지이(GE)와 풍력 터빈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효성은 중국 상하이일렉트릭, 유니슨은 중국 밍양과 손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이 이끌던 풍력발전 시장에서 최근 떠오르는 시장이 한국이다. (풍력발전 비중이 낮은) 한국은 아직 설치할 곳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또 국내·외 기업이 서로 손을 잡아야 서로 유리한 점도 있다. 우리는 국외 기업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고, 국외기업은 한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국내 기업 부품 사용 비율(LCR)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두 세계 풍력산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 발간 ‘세계풍력 리포트 2022’를 보면,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지난해 837GW에서 2026년 1395GW로 성장할 전망이다. 더욱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제정해 재생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유럽은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0%에서 45%로 높이는 리파워 이유(REPowerEU)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와 대만·일본 등도 해상을 중심으로 풍력발전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 글로벌 자본, 국내 풍력시장 눈독
이에 글로벌 자본이 국내 풍력발전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사례도 이어진다. 울산 부유식 해상 풍력발전 사업에는 덴마크 투자운용사 씨아이피(CIP), 영국 지아이지(GIG), 스웨덴 코엔스헥시콘, 네덜란드 석유기업 쉘, 스페인계 한국부유식풍력(KFW) 등이 민간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세계 풍력산업 설비 능력은 2018년 이후 4년 평균성장률 12.5%(세계풍력산업협회(WWEA))씩 성장했다.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국외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선점해, 후발주자 겪인 국내 기업 쪽에서는 진입장벽이 높은 상태이다. 베스타스·지이재생에너지·지멘스카메사 등 메이저 3사가 중국을 제외한 육상 풍력 시장 80%와 해상 풍력 시장 90%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 역시 중소업체들을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국내 풍력 업계 관계자는 “국내 관련 업체들이 후발주자라 격차가 있다.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경험과 실적을 축적하며 격차를 좁혀야 한다.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중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곳은 씨에스윈드, 윈앤피(유니슨 자회사), 동국에스엔씨(S&C) 등 하부 구조물과 풍력 타워 업체들이다. 씨에스윈드는 포르투갈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생산업체 에이에스엠아이(ASMI)사를 인수해 유럽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세아·동국 등 철강업체들은 장비 쪽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세아제강지주 영국 생산법인 세아윈드는 지난해 말 세계 최대 해상풍력 발전사업 ‘혼시3 프로젝트'에 공급될 모노파일(하부구조물)을 수주해, 영국 내 유일한 모노파일 생산업체로 주목받았다.
■ 수익 하락·허가 지연 ‘리스크’
해양플랜트 제조 기술을 가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는 바다 위에서도 발전용 터빈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떠받치는 구실을 해주는 부유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부유체 기술은 세계적으로 상용화 초기 단계이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조선업계에선 기존에 하던 해양플랜트 분야 기술의 활용 분야라고 본다. 기술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시장 확대 가능성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기계·전기·제어시스템 등 8천여개 부품으로 구성된 풍력 터빈은 국내 제조사가 9곳에 이르지만 내수시장 확대가 지연되고 해외 기업의 경쟁력에 밀려, 지금은 유니슨과 두산에너빌리티만 남았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터빈 제작이 핵심일 수밖에 없는데, 이 영역을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는 것이 풍력산업 발전에서는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아이아르협의회는 지난 7월 풍력발전 기업들의 ‘리스크’와 관련해 “재생에너지 확대 방향에 따라 세계 시장은 열리고 있지만, 철강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익 하락과 전통 과제인 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한 허가 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글·사진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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