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원전발전소 1호기(오른쪽)와 2호기 모습. 1호기는 이미 설계수명을 다해 영구 정지된 상태이고, 2호기는 내년 4월8일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4월8일로 40년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노후 원전 ‘고리 2호기’의 수명 연장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원전 반경 30㎞(방사선 비상계획 구역) 안 부산시 10개 구·군 주민 168명과 울산시 5개 구·군 주민 122명 등 주민 290명이 반대 의견을 제출하며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5명 이상 시민이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면 따라야 한다. 이 경우 이미 늦어진 고리 2호기 운영 변경 허가 신청 일정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어, 고리 2호기의 내년 4월 가동 중단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산광역시와 울산광역시로부터 받은 ‘고리 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관련 주민의견 일체’를 보면, 의견 수렴 대상(원전 반경 30㎞ 이내)인 부산 구·군 10곳에서 총 168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27건(16%)은 원전 반경 5㎞ 안에 위치한 기장군에서 접수됐다. 원전 반경 20㎞ 내에 드는 해운대구와 금정구에서는 각각 38건과 34건이 접수됐다. 반경 30㎞ 내로 확대하면, 수영구(33건), 남구(17건), 부산진구(10건), 동래구(6건), 연제구(2건), 북구(1건) 순이었다. 반경 5㎞ 이내인 울산광역시 울주군은 24건, 울주군보다는 원전으로부터 멀지만 반경 30㎞ 이내에는 포함되는 동구는 43건, 중구는 25건, 북구는 21건, 남구는 10건이었다. 이 가운데 울주군 김아무개씨는 “공청회 개최 필요 없다. 원전 연장 사업 계속 유지 필요”라고 적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달 8일부터 이 달 5일까지 의견수렵 대상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고리 2호기 계속운전 관련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공람했고, 주민들은 지난 16일까지 의견을 제출했다. 공람과 의견수렴 대상 지역은 부산 기장군 등 10개 구·군과 울산광역시 3개 구와 울주군, 경상남도 양산시 등이다.
주민들은 의견서에서 “안전성 우려가 불식되지 않은데다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며 “공청회 개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좁은 인구 밀집 지역 지역에 다수의 호기(원전)가 있어 원전 안전성 평가가 더욱 보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중대 사고에도 자연 방사선보다 작은 피해를 받는다는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비전문가로서 초안을 이해할 수 없다. 주민 알권리를 위해 반드시 공청회가 필요하다” 등의 의견이 접수됐다.
부산의 한 주민은 “(한수원이 공개한)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은 476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 모두가 매우 전문적인 용어로서 지역주민들조차 이해하는데 무리가 있다. (지난 6월4일) 고리 2호기가 계획 예방정비를 마친 뒤 재가동을 시작해 사흘 만에 또 원자로가 정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원안위 재가동 승인 일주일 뒤에 일어난 일”이라며 “우리는 체르노빌 36년, 후쿠시마 사고 11년이 넘는 시간의 세월을 보내며 여전히 죽음의 도시로 전락해 있는 그 지역의 고통을 그대로 보고 있다”고, 노후 원전 운영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울산의 주민들도 “수명 연장보다는 먼저 노후화에 따른 구체적 운영계획을 반영해야 한다”, “전문가의 검토는 물론 민간조사단을 구성해 의견수렴할 기간을 보강해야 한다”,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추진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냈다. 주민들과 별도로 울산 동구는 구청장 명의로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내 사고 영향을 기술하는 내용에 사고별 개인 피폭선량과 집단 전신피폭선량이 누락돼 있어 보완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동구는 이어 “환경영향 저감 방안 수립, 저감 대책 수립 등도 빠져있어 보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145조에 따르면, 주민 5명 이상이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면 열어야 한다. 한수원은 이날 <한겨레>에 “오는 11~12월께 공청회를 열 예정”이라며 “반대 의견 중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의견은 평가서에 보완해서 내년 초 이후 운영변경 허가 신청을 할 때 같이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한수원은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은 내년 4월 설계수명 만료 전에 수명 연장 절차를 마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원안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월성 1호기가 최신 사례인데, 서류적합성 심사에만 1년이 걸렸다. 한수원이 지금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해도 사실상 4월 가동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고리 2호기는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에 걸쳐있는 현존 최고령 원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노후 원전 수명연장을 언급했다. 이후 지난 8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노후 원전 12기(10.5GW)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 6기를 지어,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이겠다는 에너지 정책을 구체화했다. 이에 따라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 신청 시한이 지난해 4월로 이미 지났지만, 윤 대통령 당선 이후인 지난 4월 주기적 안전성 평가서 등을 원안위에 제출하며 고리2호기의 계속 운전을 신청했고, 이후 방사선환경연향평가보고서 초안 공람까지 이어졌다.
고리 2호기 수명 연장은 원자력계와 윤석열 정부의 첫 노후원전 수명연장 도전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고리 2호기 외에도, 설계수명 만료일이 2024년 9월인 고리 3호기, 2025년 8월인 고리 4호기, 2025년 12월인 한빛 1호기 등의 계속 운전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공동대표·변호사는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보완하라는 주민·지자체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필요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는 위법행위로 볼 수 있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며 “수명 연장에 속도를 내기 위해 불법적으로 추진하다 법원에서 부인이 되거나, 사고가 날 경우 국민들만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영대 의원은 “지역주민의 의견을 묵살한 채 ‘윤석열’표 막무가내식 원전재가동작전을 추진하고 있다”며 “주민수용성 낮은 원전 수명 연장은 국민 불안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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