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H2 MEET 2023 부스에 전시된 수소전기트럭 청소차. 현대차그룹 제공
13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개막한 수소 산업 전시회 ‘에이치2 미트 2023’(H2 MEET 2023) 현대자동차 전시 부스에 육각형 모양의 모형이 등장했다. 모든 면이 맞물리는 특성이 있어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벌집처럼, 수소연료전지를 여러 개 연결할 경우 동력을 늘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만든 모형이다. 수소 승용차 넥쏘에 90㎾ 수소연료전지 1개를 넣는데, 이 전지를 2개 넣으면 수소전기청소차를 운행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게차부터 항공까지 모빌리티 안에 있는 수소연료전지를 수십 개 연결하면 발전소처럼 (전기를 공급해 주는 식으로) 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시에 나선 기업 중 가장 넓은 면적(1125㎡)을 차지한 현대차그룹은 현대로템·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이 함께 부스를 차렸다. 현대로템은 트럭 위에 실린 이동형 수소충전시스템과, 음식물쓰레기나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메탄(CH4)을 고온 스팀과 함께 반응시켜 탄소(C)를 제거하고 수소만 추출하는 수소추출기를 소개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건설도 바이오가스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을 전시했다.
■ 탄소 배출 없는 그린수소 찾아 삼만리
물을 분해해 만들 수 있는 수소는 에너지 밀도가 화석연료보다 높고 탄소도 배출하지 않아 대체에너지원으로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수소에 대한 산업계의 관심은 이번 전시회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수소 생산, 저장·운송, 활용 등 3개 부문에서 18개국 300여개 기업과 기관이 참여했다. 지난해 대비 26% 확대된 역대 최대 규모다. 국내 기업으로는 현대자동차와 포스코, 한화, 고려아연, 코오롱, 효성, 세아, 두산 등이 부스를 마련했다.
“호주의 풍부한 신재생에너지원을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그린수소 생산 기업으로 탈바꿈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린수소 생산·운반·활용 전 밸류 체인에서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철강회사인 고려아연이 호주 태즈매니아 풍력단지 공동개발 프로젝트(JDA) 협약을 맺은 이유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수소로 탄소 배출이 전혀 없다.
고려아연은 2021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에 신재생·그린수소 전문 자회사 ‘아르크 에너지’를 설립했다. 아르크 에너지는 2021년말에는 호주 최대 신재생에너지개발업체인 이퓨런(Epuron)을 인수했고, 그린수소 시장이 열리는 2030년까지 발전 사업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2030년 연간 20만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하기 위해 풍력발전 등 건설에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수소환원제련 기술 개발이 가시화되는 2050년에는 최소 연간 50만톤의 수소를 국내로 들여와, 우리가 생산하는 철강 등 금속 전량을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호주에서 만든 그린수소를 국내에 도입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수출을 통해 상업성을 높이는 게 최종 목표다.
■ 철강·발전 등 산업계…수소 기술 경쟁
포스코도 오만과 호주에서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철강업계는 석탄(코크스) 대신 수소를 이용해 제련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 수소 확보 경쟁이 붙고 있다. 유럽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탄소배출권거래제도 등 탄소를 배출한 만큼 비용을 치러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 기업들은 석탄을 대체할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2026년부터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과 수소는 탄소국경조정제도 기준을 적용받아 추가 관세를 물어야 할 수 있다.
손병수 포스코홀딩스 수소사업팀 상무보는 “2050년 기준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에 필요한 수소량은 연간 300만톤이 넘고, (발전사업의)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을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연간 100만톤 이상의 수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스코 역시 그린수소 확보가 포스코 자체 수요를 충당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요처에 산업용 수소를 판매”하는 데까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수소를 천연가스와 혼합해 발전해 혼합한 비율 만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수소혼소발전도 두산에너빌리티·한화임팩트 등 발전기업들이 미래 먹을거리로 손꼽고 있는 사업이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1조6천억원의 수소 기금을 두고 운영 중이다. 이중 11%가 수소터빈발전 연구 개발에 쓰고 지난해 하반기 20%의 수소혼소실증에 성공했다. 일본도 2030년까지 정부가 수소 기반의 발전설비 1기가와트(GW)를 보급하기 위해 수소를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동서발전·한국남동발전 등 국내 12개 산·학·연과 함께 2027년까지 ‘고효율 대형 가스터빈 50% 수소혼소 기술 개발과 실증 국책 과제’를 추진 중이다. 고효율의 50% 수소혼소 가스터빈은 기존 수소터빈보다 연간 약 700억원의 연료비를 저감하고 기존 가스터빈보다 최대 21.4%의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전기차보다 더 먼 거리를 효율성있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소상용차 시장도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에스케이(SK)이엔에스, 서울시, 씨제이(CJ)대한통운, 효성 등은 수소 버스, 상용차 확대를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공업 기반으로 수소충전소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수소 시장이 어떻게 확대되는지 거의 모든 대기업들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원을 확보한다는 의미, 에너지 시장을 선점한다는 의미에서 미래 먹을 거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그린수소 확보가 관건
액화 수소 가격은 세계적으로 ㎏당 1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이 1ℓ에 2달러(약 2800원) 정도임을 고려하면 경제성을 확보하는 게 수소 경제 활성화의 최대 관건이다. 또 수소는 저장과 수송, 운반이 쉽지 않아서 추가적인 기술 개발과 비용도 필요하다. 한국은 부족한 재생에너지가 그린 수소 산업 생태계 확대의 걸림돌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런 까닭에 해외에서 수소를 얻으려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포스코홀딩스, 삼성엔지니어링,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프랑스 엔지(ENGIE), 태국 피티티이피(PTTEP) 등 3개국 6개사 컨소시엄이 지난 6월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오만 정부가 설립한 하이드롬(Hydrom)사와 두쿰 지역 그린수소 독점 사업 개발과 생산, 부지 임대계약을 체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계약으로 무스카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 떨어진 알우스타주 두쿰 지역의 면적 340㎢(서울시 절반 크기)에서 향후 47년 간 그린수소 사업을 독점 개발·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5GW(기가와트)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단지와 수소 생산 플랜트를 지어 물 전기 분해 방식으로 연간 약 22만톤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 청정수소 인증 실시
정부는 올해 하반기 청정 수소 인증제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재 한국에서 생산하는 수소는 그레이수소(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물에 함유된 수소를 추출하는 개질방식)가 대부분이다. 개질할 때 나오는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기술(CCS)을 접목시켜 탄소만 제거한 블루수소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이용한 그린수소,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력을 이용해 만드는 핑크 수소 등이 있다.
정부는 수소를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 청정수소로 인정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제도를 2024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며 청정수소와 수소운반체 역할을 하는 암모니아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그린수소는 1㎏당 최대 3달러(약 4천원)의 세액 공제를 제공하고 블루수소는 4㎏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경우에만 최대 0.6달러(약 776원)을 공제할 예정이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한 청정수소 인증제 설명회에서 송한호 서울대 교수는 청정수소 인증 기준을 미국과 동일한 수소원료의 채굴부터 수소생산까지 배출량을 산정해 배출하는 탄소량을 1㎏H₂당 4㎏CO₂eq로 제시했다. 수소 1kg 당 탄소 4kg(이산화탄소 환산톤)이 배출되는 정도다. 송 교수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통해 생산하는 그린수소, 화석연료로 생산한 그레이수소에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저장(CCUS) 기술을 적용하여 생산한 블루수소 등 수소 생산 유형별로 배출량 산정 방법을 달리 하는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라고 했다.
반면 기후단체에서는 탄소포집 저장·활용 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 블루수소(액화천연가스, 암모니아 등의 화석연료 개질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제거한 수소)를 만들기 위해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개발을 멈추지 않는 점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온전히 줄일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더 낫다고 본다.
이옥헌 산업통상자원부 수소경제정책관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1㎏H₂당 4㎏CO₂eq 배출량을 청정수소로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정부가 올해 안에 청정수소 인증 기준을 만들면 기업은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기술 개발 등 노력을 하고 사회로부터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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