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활성화 이유 금산분리 훼손…총수일가 보유 기업 투자는 금지
외부자금 허용, 입법 때 진통 예상 ‘재벌의 벤처생태계 잠식’ 우려도
외부자금 허용, 입법 때 진통 예상 ‘재벌의 벤처생태계 잠식’ 우려도
정부가 기업형벤처캐피탈(CVC) 도입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을 내놨다. 앞서 지난달 초 에스케이(SK)·엘지(LG) 등 일반지주회사도 금융회사인 시브이시 소유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뒤 불거진 금산분리(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소유 금지) 원칙 훼손 논란과 관련해, 재벌 그룹의 경제력 집중 우려를 줄이기 위한 세부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지주사의 책임성 강화 등을 위해 지주사가 시브이시의 지분을 100% 확보하도록 하는 등의 안전장치가 담겼으나, 시브이시가 벤처·중소기업 투자를 위해 조성할 펀드에 그룹 밖 외부 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터줘 논란이 예상된다.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는 30일 ‘일반지주회사의 시브이시 제한적 보유 추진방향’에서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제한적 시브이시 소유를 허용하겠다”며 “이를 위해 올해 안에 정기국회를 통해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 6월 초 일반지주회사의 시브이시 보유를 허용하더라도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선 지주회사는 완전 자회사(지분율 100%) 형태로만 시브이시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자회사(상장회사 기준)의 지분 보유 의무 비율 20%를 크게 끌어올린 것이다. 그만큼 지주회사의 책임성을 강화한 것이다. 또 시브이시의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200% 이내로 제한하고, 벤처기업 투자외에 대출과 같은 다른 업무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주로 국내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해외투자는 최대 20%로 제한된다.
총수일가의 사적 이익에 시브이시가 동원되지 않도록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과 계열사에는 투자가 금지된다. 시브이시 투자를 받은 중소·벤처기업을 10년간 지주회사의 계열사로 편입할 수도 없다. 시브이시를 통핸 재벌그룹의 경제력 확장을 막기 위한 조처다. 시브이시에 돈을 낸 출자자와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등은 공정위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김재신 공정거래위 사무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금산분리 예외를 최소화하면서 풍부한 유동자금을 혁신성 높은 벤처기업으로 보내려는 조처”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68곳에 ‘시브이시 투자 의향’을 물은 결과 18곳(대기업 7곳 포함)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시브이시 허용을 담은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을 올해 안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정부안 그대로 국회에서 확정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시브이시가 조성할 펀드에 외부자금을 40%까지 끌어다쓸 수 있도록 한 대목을 놓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 쪽은 “대기업집단이 외부자금까지 끌어와 벤처캐피탈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금융사 구실을 허용하는 것으로 벤처 활성화를 위해 금산분리를 제한적으로 완화한다는 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다. 입법과정에 추가 조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 쪽은 제도 운영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으면 비율 조정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기업과 관련되지 않은 벤처기업에 얼마나 효능을 발휘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는 “정부가 혁신경제의 하나로 시브이시 활성화를 추진하지만, 자칫 재벌대기업이 기존 벤처생태계를 잠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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