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코인노래방에서 주인 김아름(42·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홍보국장)씨가 영업장 자판기에 음료수를 채우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3년부터 서울 동작구에서 피시(PC)방 두 곳을 운영해온 김기도(42)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평균 매출이 예전의 20~3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다달이 꼬박꼬박 나가는 임대료 부담에 허리가 휠 정도다. 견디다 못해 피시방 두 곳 가운데 한 곳은 폐업 절차를 밟는 중이다. 임대료를 낮춰주지 않는 임대인이 원망스럽긴 해도, 그는 임대인을 탓하기보다는 외려 정부에 불만을 드러냈다. “임대인도 합법적으로 월세를 받는 건데, 정부가 임차인과 임대인을 싸움 붙이듯 하잖아요.” 김씨는 “정부가 임대인에게 지원을 좀 더 해줬더라면 ‘착한 임대인 운동’도 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자영업자는 또 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김아름(42)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 홍보국장도 “(감액)요구권을 줄 테니 임대인과 임차인이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한 법안이 어디 있느냐”며 “대안도 없고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영업 중단만 시키면 어쩌자는 거냐”고 답답해했다.
두 사람이 아쉬워하는 건 지난 9월24일 국회가 통과시킨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의 내용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는 것(감액 요구권). 둘째, 세입자가 6개월간 월세를 밀리더라도 건물주가 쫓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건물주와 세입자 양쪽 모두로부터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건물주의 입장이야 이해된다 치더라도, 분명 세입자 보호장치가 들어갔는데 왜 코로나19로 피해가 막심한 소상공인조차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코로나19 사태처럼 소비 지출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감면은 분명 연대소비의 또 다른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자영업자 입장에선 선결제 등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일만큼이나 고정 지출을 줄이는 일도 중요해서다. 지난달 7일 소상공인연합회가 소상공인 34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소상공인 영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사업장 경영비용 중 가장 부담 되는 항목으로 ‘임대료’를 꼽은 응답자 비율이 69.9%로 가장 높았다.
문제는 임대료를 어떻게 낮추느냐, 누가 고통분담을 하느냐다. 당장 이달 초 참여연대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임대인과 정부의 고통분담을 위한 입법을 요구했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영업제한 업종은 거리두기 완화로 제한이 풀린 뒤에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며 “추가 재정을 투입해 정부도 임대료 감면 보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의 실효성 문제도 함께 지적한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임차인이 임대인한테 밉보일 게 뻔한데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감액 청구를 하더라도 임대인이 응해야 할 의무가 없어 분쟁과 소송은 이전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는 데는 성공 여부가 오로지 임대인의 ‘희생’과 ‘선의’에 달려 있는 탓이 크다.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만 키우기 십상이어서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초기 정부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벌이며 자발적인 임대료 인하 바람이 불길 기대했다. 6월까지 한시적으로 건물주가 소상공인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깎아주면 인하액의 50%만큼 소득세·법인세 세액공제로 돌려주는 지원책도 내놨다. 지난달 여야는 코로나19 장기화를 고려해 이런 세제혜택을 길게는 내년까지 연장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연예인 건물주가 월세를 받지 않았다는 훈훈한 ‘미담’도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선 갈등의 골이 깊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라 해도, 꼬박꼬박 은행에 이자를 물어야 하는 ‘생계형 임대인’도 많다. 세액공제 규모가
금융비용(은행 이자)에 턱없이 모자란다고 느끼는 생계형 임대인들은 “계약대로 임대료를 받으면 나쁜 임대인이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출 없으면 착한 임대인 동참하고 싶네요. 시청에서는 착한 임대인 동참 안내문 오던데, 은행에는 안 보내나요? 착한 은행 동참하기. 월세 며칠 밀려도 우리(임대인)는 봐주지만 은행은 절대 봐주질 않죠.” 코로나19 재확산에 즈음해 다시 ‘착한 임대인 운동’ 이야기가 거론되자, 9월 초 한 임대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국회와 정부가 이런 임대인들을 외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30대 후반의 남성 ㄱ씨는 2015년 정부세종청사와 가까운 세종시 도담동의 한 상가 분양권을 웃돈까지 얹어 4억원대에 매입했다가 최근 3억원에 ‘급매’로 내놨다. 상권 형성이 더뎌 월세는 계속 떨어졌다. 처음엔 100만원씩 받던 월세는 7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대출금 1억원에 대한 이자는 20만원씩 꼬박꼬박 나간다. 다달이 나가는 세금과 국민연금 등 각종 지출을 고려하면 적자였다. ㄱ씨는 “현금이 많은 임대인은 몰라도 노후를 바라보고 대출을 껴 상가 한 채 산 임대인들은 어려운 사람도 많다”며 “착한 임대인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ㄱ씨 상가의 임차인이 월세를 밀린 적 없지만, 만일 6개월 연체까지 임차인 퇴거조처를 할 수 없다면 ㄱ씨부터 나앉을 판이었다.
국외 소상공인들도 임대료 고통을 겪는 건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닥치자 주요 나라들은 임차인은 물론이고 임대인까지 보호하는 법을 서둘러 만들었다. 임대인을 배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임대인도 함께 보호해야 결과적으로 임차인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관련 경제보호법인 ‘케어스 액트’(CARES Act)에서 임차인이 120일 임대료 지급을 연체했다는 이유로 강제퇴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대신 임대인 역시 대출금을 갚지 못하더라도 금융기관이 부동산 등 재산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못박았다. 한시적으로나마 정부와 금융권까지 고통을 분담하는 구조를 짠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임대인에게 세제 감면뿐 아니라 대출상환 유예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일정 기간 임대료의 75% 이상을 감면하도록 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선 건물주가 임차인에게 영업 피해에 비례해 임대료를 깎아주고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다만 우리와 달리 임대료 조정과 관련해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협상 의무를 부여해 책임 권한을 명확히 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최근 상가임대차 보호 입법례를 조사한 김명수 국회도서관 전문경력관(법학박사)은 “코로나 유행으로 모든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으므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당사자 사이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구돼야 하고, 임대인에 대한 보호 대책도 충분히 고려해 임대차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박수지 김윤주 기자 suji@hani.co.kr
‘임대료 증감액’ 기준 명문화 지방정부 조례라도 만들어야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된 개정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의 첫번째 소송 사례는 ‘동대문 두타’가 됐다. 시행 2주 뒤인 지난 16일 두산타워 입주 상인 6명이 두산타워를 상대로 ‘차임(임대료) 감액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상인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반토막 난 만큼 임대료도 50%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두산타워 쪽은 “이미 임대료를 10~50% 감면해주고 있다”며 “관리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임대료를 반으로 줄일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허술한 법안이 낳은 ‘예고된 갈등’이었다. 개정 상가임대차법은 코로나19를 포함한 ‘제1급 감염병 등에 의한 경제 사정의 변동’을 임차인이 감액청구권 행사 사유로 삼을 수 있게 규정했지만, 임대인이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또 경제 사정이 나아졌을 때 임차인의 부담이 급격히 느는 걸 막기 위해 임대인의 증액(최대 5%) 청구에만 상한을 뒀을 뿐, 애초 임차인의 감액 청구에는 별도 하한선이 마련돼 있지 않다. 임대인과 임차인 양쪽이 협상으로 풀기 어려운 구조다. 두타 사례만 보더라도, 매출 하락 비율에 맞춰 임대료 할인율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을지, 임대인의 고정비용 등을 모두 차감한 뒤 계산을 하는 게 옳은지, 순이익 하락 비율에 맞춰 임대료를 감액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당장에 떠오르는 의문이 여럿이다.
이런 이유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소송에 직행하지 않고 참고할 만한 ‘상가임대료 감액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개정 입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지방자치단체 조례 형태로나마 경우에 따른 임대료 감액 비율 등을 둔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적정 수준인지 판단할 기준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재석 대한법률구조공단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서울지부 사무국장(변호사)도 “실제로 상가임대차법 시행 이후 평소보다 많은 분쟁 관련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임대인과 임차인이 레퍼런스(준거)로 삼을 만한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분쟁과 소송 등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