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구속된 이튿날인 19일, 삼성그룹 분위기는 외견상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룹 내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별다른 위기대응 지침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분위기와 달리, 그룹 내부에선 당장 21일 열리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이번 판결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흐름도 감지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삼성이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9일 삼성그룹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으나 그룹이나 개별 계열사 단위의 공식적인 대응 방향 및 지침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이날 삼성 서초사옥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왔지만,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특히 전자부문 사업을 조율하는 정현호 사장(사업지원 태스크포스 팀장)과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디바이스솔루션 총괄), 이인용 사장(대외협력 담당) 등이 만나 대책을 논의할 거란 예상이 나왔지만, 삼성 임원들은 “아는 바가 없다”며 일제히 함구했다. 전날 법원의 선고 직후 이 부회장이 삼성 사장단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여부도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 주변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 선고가 벌써 네번째다. 삼성에서 ‘총수 사법 리스크’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어 평소처럼 차분하게 일상 업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여러 차례 총수 리스크를 겪으면서 일종의 ‘근육’을 형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최고경영진에서 조만간 조직 운영과 사업 방향 등 큰 윤곽을 마련해 내려보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 쪽의 관심은 21일로 예정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정기회의로 쏠리고 있다. 21일 회의에서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삼성전자 계열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에 대한 준법감시 강화 방안도 논의된다. 준감위는 26일엔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7개 협약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만난다.
재상고 여부를 두고선 그룹 법무팀을 중심으로 고심을 거듭하는 분위기다. 만일 재상고를 하지 않으면 형이 확정돼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문제가 당장 불거지게 된다. 이날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어 “판결이 확정되면 법무부는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에 따라 이 부회장이 재직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이 부회장의 해임을 즉각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1년6개월의 잔여 형기 동안 삼성전자 경영에서 배제될 뿐 아니라, 특경가법상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형 집행이 종료된 내년 7월 이후에도 5년간 삼성전자에 재직할 수 없다는 얘기다. 취업 제한으로 ‘옥중 경영’도 원칙상 불가능해진다.
더군다나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관련한 이른바 ‘불법 경영권 승계’ 재판도 남겨둔 터라 삼성이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총수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대신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을 견제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체제로 탈바꿈하자는 얘기다.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와 박상인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총수는 대주주로서 (이사회 의장을 맡는 등의 방식으로) 이사회에서 중장기 경영의 큰 방향을 제시하거나 유능한 전문경영자를 선임하고 또 이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제안했다. 그룹 차원 이슈는 사장단 회의에서 결정하고, 계열사 경영은 이사회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총수가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도 “글로벌 기업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이사회와 전문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경영한다”며 “이사회가 자신의 역할을 찾도록 이사회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완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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