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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부동산

전세 삼키는 월세…‘서민 보호막’ 비상등

등록 2016-07-25 17:37수정 2016-07-25 22:46

[오늘 스포트라이트] ‘다세대 월세 50% 돌파’ 전월세 대책 어디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던 지난달 1일, 한 시민이 서울 잠실의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 상가에 부착된 부동산 매물 현황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던 지난달 1일, 한 시민이 서울 잠실의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 상가에 부착된 부동산 매물 현황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세입자 김아무개씨는 오는 10월 아파트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최근 집주인한테서 재계약에 관한 연락을 받았다. 기존 전세금은 3억원인데 현재 시세(3억5000만원)에 맞춰 다달이 월세 20만원을 추가로 내는 조건으로 재계약하거나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였다. 김씨는 “전세 대출을 받아 인근 다른 아파트로 이사가는 방법과 반전세로 눌러앉는 방법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며 “전세금을 더 높였다가는 ‘깡통전세’가 될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월세를 내는 게 차선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정아무개씨는 6년간 전세를 놓았던 덕양구 화정동의 전용면적 50㎡짜리 소형 아파트를 월세로 바꾸려고 최근 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했다. 전세금을 올려 현재 세입자와 재계약하는 대신에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5만원짜리로 바꿔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기로 한 것이다. 정씨는 다음달부터 다달이 월세를 받아 5년 거치, 30년 만기인 금리 2.55%짜리 주택담보대출의 월 이자 20여만원을 갚아나갈 계획이다. 정씨는 “저금리로 인해 전세를 빼주고 월세를 받는 데 따른 이익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저금리 여파로 전월세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집계를 보면, 올 상반기 전체 주택의 전월세 거래량은 74만7745건인데, 이 가운데 월세는 34만3814건(46%)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월세 비중은 13.5%포인트나 늘었다. 특히 다세대·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는 월세 비중이 50.5%를 기록했다. 정부가 2011년부터 전월세 실거래가 신고를 집계한 이래 월세 비중이 절반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파트의 월세 비중은 40.5%로 처음으로 40%대에 올라섰다. 특히 서울의 경우 아파트 월세 비중은 5년 전 17.4%에서 올해 상반기 38.3%로 2.2배나 급증했다.

월세 세입자 보호 강화해야 전세가 줄고 월세가 빠르게 늘어나는 데는 사상 최저치 기록을 바꾸고 있는 저금리의 영향이 크다. 집주인 처지에서는 전세로 빌려줄 때보다 대출을 받더라도 전세금을 빼주고 월세를 받는 편이 수익률 면에서 훨씬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보증금 반환 부담이 적은 소형아파트와 다세대, 단독주택 등은 월세 전환이 더욱 활발하다. 고양시 화정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제 교통이 좋은 역세권 소형아파트는 월세만 거래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 남은 전세 아파트조차 투자자들이 구입한 뒤 계약 만료 때는 대부분 월세로 돌리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여파 올 상반기 ‘월세 46%’
2년전보다 3.8%p나 늘어
아파트 월세비중 40%대 진입
서울은 5년새 2.2배 가파른 상승

‘전월세전환율 인하’ 통과됐지만
재계약땐 적용 안돼 ‘속빈 강정’
인상률 제한·재계약 1회 청구권 등
야당 발의 임대차보호법안 5건 대기
정부·여당 끈질긴 반대 ‘산넘어 산’

서울·경기 일부 전세가율 80% 돌파
역전세난에다 깡통전세 위험까지
세입자 보호·주거비 경감 ‘한목소리’

부동산업계에서는 전세의 월세 전환 증가는 저금리와 함께 경기 불황으로 집값 상승 기대감이 꺾인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월세 수요 증가에 대비해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 등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 도심권의 경우 월 임대료가 많게는 100만원에 가까운 뉴스테이는 소득이 적은 세입자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전월세전환율 인하를 뼈대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이 역시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개정안은 전월세 전환율 계산 방법을 종전의 기준금리 4배 이내 또는 연 10% 이내에서 ‘기준금리+대통령이 정한 값’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금리가 1.25%로 내렸고, 대통령이 정한 값은 ‘4’(예정)이기 때문에 전월세 전환율은 5.25%로 법개정 이전보다 0.25%포인트 높아졌다. 또 전월세 전환율은 임대차 계약 기간에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만 적용될 뿐 재계약 때는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전세와 월세 모두 가격 인상을 적정 한도에서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20대 국회 들어 ‘임차인 계약갱신청구권 1회 도입’과 ‘임대료 인상률 연 5% 제한’을 뼈대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5건을 잇따라 발의해놓은 상태다. 두 제도는 전월세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핵심적인 장치로 손꼽히는데, 19대 국회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여당과 정부의 끈질긴 반대로 법안이 폐기된 바 있다. 야권이 20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는 임차인의 제3자에 대한 대항력 발생일을 ‘주택의 인도와 전입신고를 마친 다음날’이 아닌 전입신고일 당일로 앞당기는 등 좀더 진일보한 세입자 보호 대책도 담겨 있다.

역전세난, 깡통전세 대비해야 부동산업계에선 최근 과열 양상을 보이는 주택시장이 공급 과잉, 저성장과 경기침체 등 악재를 만나 예상치 못한 급락세로 돌아설 경우 전월세시장에 끼칠 파장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서울 동남권의 전셋값이 하락하는 등 일부 지역에서 ‘역전세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고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은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케이비(KB)국민은행이 집계한 6월 아파트 전세가율은 전국 75.4%, 서울 75.1%에 이른다. 특히 서울에서는 성동·성북·중·관악·구로·동작구 등 6개구, 경기도에서는 고양·안양·의정부·용인·군포·의왕·파주 등 7개 시의 전세가율이 80%를 돌파해 전셋값이 매맷값의 턱밑에 다다랐다.

이에 따라 세입자가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 위험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김규정 엔에이치(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등이 나와 있지만 임대인 동의 등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 임차인을 보호하는 데는 역부족인 실정”이라며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때는 은행 등 공적기관이 우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지급하고 세입자의 권리를 승계해 경매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택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세입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경매 낙찰가격으로 임차인이 우선매수)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임대료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충해나가는 한편 봉급생활자 월세 소득공제, 저소득층 주거급여 확대 등 서민들을 위한 주거비 경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부동산학과)는 “정부가 미분양주택 매입과 연기금 활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민용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저소득·취약계층을 위한 주거급여(주택 바우처)를 확대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거급여는 중위소득 43% 이하 계층의 실제 주거비(월세) 지출액을 파악해 현금으로 지원해주는 제도로, 지난해 80만가구에 월평균 10만8000원이 지급됐다.

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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