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월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새해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해 하반기 서울 부동산 시장이 과열 현상을 보일 때 “앞으로 집값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간혹 받았다. “계속 오를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집을 사야 하는 거냐” “정부의 의지가 있으니 거품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취지였다. 정부 뜻대로도 되지 않고 전문가도 잘 모르는 걸 내가 어찌 답을 내겠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동산은 끝났다>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답을 대신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기틀을 다진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1년 7월에 펴낸 책에 담긴 내용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기순환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부동산 거품 형성과 붕괴는 언제나 그런 일반적 경기보다 큰 충격을 안긴다… 이 때문에 정부 정책은 부동산 시장에서 경기 변동성을 줄이는 것을 기본 기조로 삼게 된다. 즉 너무 오르는 것도 막으려 하지만, 동시에 너무 떨어지는 것도 막으려 하는 것이다… 물론 집값이 폭등하더라도 그것이 거품이라면 결국 붕괴되어 제자리를 찾아온다는 점에서, 내버려둬도 되지 않느냐는 극단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자원 낭비와 특히 시장 정보력이 약한 서민들의 피해가 크기에 정부는 거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가격이 너무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도 정부로서는 원치 않는다는 얘기다. 거품을 터뜨리는 쾌감은 있을지 몰라도 후과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폭락을 이끄는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당면 목표는 가격 안정, 연착륙인 셈이다.
그러므로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꺼낸 ‘부동산 가격 원상회복’은 정치적 구호는 될지언정 정책 지향점이 될 순 없다. 문 대통령은 ‘원상회복의 기준’을 묻는 추가 질문에 “너무 이례적으로 가격이 오른 지역이나 아파트에 대해서 가격을 안정화시킨다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정한 목표를 정해놓고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건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걸 대통령도 알고 있는 듯하다.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의 등락을 나타내는 매매지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97.8이었지만 지난해 12월엔 108.2로 치솟았다. 애초에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 오르지 못하게 철저히 틀어막았어야 했다.
뜨거웠던 지난해 하반기를 보내고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필승을 다짐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치열한 이념 다툼이기도 하다. 집값을 억누르려는 정부 정책을 향해 경제신문을 포함한 보수언론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정부의 역할 자체를 죄악시한다. ‘부동산 정책 무용론’의 근거로는, ‘풍선효과’ 프레임이 전방위적으로 활용된다. 수많은 풍선효과 기사를 보면, 강남을 누른 탓에 불룩 튀어나온 부분으로 처음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 집중하고 마용성의 집값 상승세가 꺾이면 이번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눈을 돌린다. 서울 집값이 전체적으로 안정되면 이번엔 수용성(경기 수원·용인·성남시)을 소환한다. 그다음 차례는 대대광(대구·대전·광주시)이다. 투기 열풍을 보톡스처럼 흡입한 풍선이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는 모양새다. 풍선효과로 무장한 ‘부동산 기득권 세력’이 정부에 보내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가만히 있으라.”
이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다. 집값을 잡으면 된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정부는 시장 만능주의, 규제 무용론도 돌파할 수 있다. 풍선효과 프레임은 자연스레 바람이 빠질 것이고, 다주택자 보유세 폭탄을 걱정하는 ‘박애주의적 보도’도 머쓱해질 것이다.
정부는 12·16 대책 발표 즉시 대출 규제라는 즉시화력을 ‘시전’한 데 이어 자금 출처 강화라는 무기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부동산종합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6~8주가 걸린다는 정부의 설명대로 서울 강남 3구 아파트값은 지난 23일, 7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이번주에도 그 추세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서울 전체 아파트값 상승률은 0.02%를 기록해, 지난해 7월 이후 31주 연속 상승세다. ‘풍선효과 공세’를 누그러뜨리려면 우선 서울 집값부터 하락세로 돌려야 한다. 다음주에는 가능할까. 그렇게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김태규 경제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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