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LH혁신방안 대국민 브리핑에 앞서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국무조정실 윤창렬 국무2차장(오른쪽)과 안도걸 기획재정부 2차관(왼쪽)과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기능을 분리하는 조직 개편안 확정이 8월로 연기된 가운데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해체 수준’의 조직 개편이라면 단기간에 밀어부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국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치적 수사만 앞세운 탓에 불필요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원들의 광명·시흥 새도시 투기 의혹으로 불거진 ‘엘에이치 사태’ 이후 전사적인 ‘자숙 모드’에 들어갔던 엘에이치 내부는 모·자회사 분리 등 엘에이치 조직 개편안이 가시화하자 조금씩 동요하고 있다. 엘에이치 노조 집행부는 지난 3일과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썩은 부위 도려내고 분골쇄신 하겠습니다. 국민에게 손해끼칠 졸속 개혁안은 막아야 합니다”, “비효율 초래하는 졸속쇄신 거부한다. 노동존중 무시하는 일방개혁 철회하라” 등의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4일 만난 김도현 엘에이치노조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 때 토공과 주공이 통합하긴 했지만 통합 논의가 시작된 것은 90년대였고, 이후 10여년 이상 연구가 이뤄지고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며 “통합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해체를 몇 개월만에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엘에이치 통합 출범은 2009년이지만 엘에이치 내부에서 통합노조가 나온 것은 2019년 3월이었다. 전 직원이 투표를 통해 통합 집행부를 세운 것은 지난해 12월 임기를 시작한 현 집행부가 최초다. 그 전에는 토공 출신 노조, 주공 출신 노조, 통합된 이후에 입사한 직원들 중심의 노조까지 3개 노조가 있었다. 김 실장은 “이제야 겨우 조직 내부에서 화학적 통합이 이뤄졌는데 해체라니 허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은 1990년대 공기업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도마에 올랐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인수위 때도 업무 통합에 따른 효율성을 이유로 유력한 통합 대상으로 거론됐고, 건설교통부가 국토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해 ‘토공과 주공의 통합방안’이 나온 게 2001년의 일이다. 실제 통합은 그로부터 8년 뒤인 2009년에 이뤄졌다.
기능 분리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 역시 6월을 기한으로 한국능률협회에 기능 분리 관련 용역을 맡겼으나 용역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가 추진하는 3가지 방안이 확정됐다. 최종 결과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용역은 아니라는 얘기다.
‘천덕꾸러기 취급’ 주거복지 기능 강화로 전화위복?
‘해체 수준의 개혁’이라는 말은 지난 3월11일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엘에이치 직원과 국토부 공무원의 3기 새도시 토지보유 현황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처음 나왔다. 다만 과거처럼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분리하는 방안은 3기 새도시나 2·4 대책의 공공 주도 도심 개발 등 공급대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 총리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분리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5월18일 김부겸 신임 국무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엘에이치는 거의 해체 수준으로 결론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또다시 ‘해체 카드’를 꺼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조직 개편안은 주거복지기능과 토지·주택 개발기능을 분리하는 방안으로 관점에 따라 ‘해체’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고강도 개편안이다. 엘에이치 사태를 그동안 취약했던 주거복지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7일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개발 중심인 엘에이치 조직 디엔에이(DNA)를 주거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탈바꿈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자는 “그동안 엘에이치는 택지개발하는 엘(L·토지)이라는 기능이 더 우위에 있었고 에이치(H·주거복지)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토지개발 기능이 강화된 상태에서 직원들 투기문제가 나왔고 여기서 민간건설사에 땅 매각하는 문제나 수분양자의 로또 분양 문제도 생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주거복지 수요가 훨씬 더 다양하고 많아질 것”이라며 “그린벨트 훼손해서 신도시 만드는 개발의 시대는 끝났고 1기·2기 신도시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등 새로운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영화 우려에 경남 지역경제 타격 반발까지 첩첩산중
정부는 주거복지기능을 모회사로, 토지·주택개발기능을 자회사로 두는 모·자회사 수직 분리안에 힘을 싣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견이 커 당장 8월까지 제대로된 조직 개편안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전문가들 의견도 갈린다. 김용창 서울대 교수(지리학과)는 “그동안 택지개발과 분양주택 위주로 생각했다면 공공사이드의 본질을 주거복지 본위로 두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 모·자회사 분리방안이 될 수 있다”며 “자회사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어차피 토지 강제수용권에서 발생하는데 모·자회사 형태를 통해 강제수용권을 부여하는 명분이 생길 수 있고, 나아가 개발이익은 주거복지를 위해서 사용하는 쪽으로 명확히 제도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임재만 세종대 교수(공공정책대학원 부동산학과)는 “지금도 땅 팔고 건물 팔아서 주거복지하는 교차보전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모·자회사를 분리한다고 이런 방식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주거복지를 더 책임감 있게 수행한다는 원칙이 없으면 반쯤 민영화된 상태로 돈벌이에 치중해 공공성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엘에에치가 이전한 진주시나 경상남도 등 지역사회 반발도 조직개편안 마련 과정에서 넘어서야 할 산이다. 정부가 엘에이치 1차 혁신방안을 발표한 7일 조규일 진주시장은 정부서울청사와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조 시장은 “정부의 엘에이치 혁신방안은 사실상 엘에이치가 해체되는 수순으로 경남진주혁신도시를 비롯한 지역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며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에 엘에이치 해체라는 전혀 엉뚱한 처방을 도출한 정부 정책 방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도 5월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 “엘에이치 혁신안이 엘에이치를 중심으로 구성된 경남혁신도시 기능을 축소하거나 약화시켜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엘에이치 노조 자료에 따르면, 엘에이치가 납부하는 지방세는 진주시 전체 징수분의 15%를 차지한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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