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매출액이 350만원 늘어날 때마다 1명씩 고용을 늘리기로 했어요.” 전주의 사회적기업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장윤영 대표는 교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지역사회를 위해 할 일을 찾던 중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빔밥 재료를 활용한 ‘비빔빵’을 선보였다.
▶ 전통음식인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로 만든 빵. 전주의 사회적기업 천년누리 전주제과가 선보인 비빔빵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위해 만든 한 사회적기업의 ‘히트상품’이다. 이윤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취약계층의 일자리부터 늘리겠다는 이들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비빔빵을 만든 사람을 인터뷰하러 전주에 간다고 하자, 지인이 물었다.
“비빔밥?”
전주, 라고 하니 곧바로 비빔밥이 생각난 것이었다.
“아니, 비빔빵!”
질문이 되돌아왔다.
“빠~앙?”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를 넣어 만들었대.”
“그게 빵이 돼? 하하하.”
“없어서 못 판대!”
정말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월28일 일요일, 비빔빵을 만든 사회적기업 ㈜천년누리 전주제과 장윤영(47) 대표를 만나러 전주에 갔다. 점심으로 비빔빵 하나를 먹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지난해 서울에 배달된 비빔빵을 먹어본 적이 있다. 이번에 두번째 먹어보는 것인데, 오래전부터 입에 익은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고추장 소스에 채소가 아삭아삭 씹히는 게 비빔밥보다 훨씬 입에 부드러웠다.
‘전주 비빔빵’은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기 직전의 옛 천년누리 전주제과에서 2015년 10월 태어났다. 애초 사회복지법인 ‘나누는 사람들’이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2012년에 문을 연 빵집이다. ‘나누는 사람들’은 막걸리 가게 ‘봄’과 빵집 ‘천년누리 전주제과’를 시작했다. 봄은 그런대로 장사가 됐지만, 빵집은 그렇지 못했다. 위치가 전주시청 근처, 주택가나 상가와 동떨어진 곳이라 오후 6시가 넘으면 사람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단지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로 터잡은 곳이다.
“그래, 딱 6개월만 해보자”
남들 하던 대로 따라 한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소화가 잘되는 단팥빵을 만들었다. 손이 커서 국산 팥으로 만든 앙금을 잔뜩 집어넣으니, 다른 곳에서는 70~80g짜리인 단팥빵이 이곳에선 거의 갑절인 140g짜리가 됐다. 국산 밀과 팥은 재료값이 수입품의 6배였다. 반죽 숙성에도 3배나 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값을 비싸게 받기는 어려웠다. 새로운 ‘건강빵’ 집이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에, 할머니들의 단팥빵만으로 빵집이 제대로 굴러가기는 애초 어려웠다. 이러던 와중에 2014년 비빔밥 재료를 활용해 빵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개발에 나섰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빵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누는 사람들’의 이사 가운데 한명이던 장윤영 대표가 천년누리 전주제과를 떠맡은 것은 2015년 7월의 일이다. 전북 장수 출신인 장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10년을 일했다. 2009년부터 전북과학대 사회복지학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학교를 쉬고 지역사회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2015년 초, 그에게 빵집 경영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래, 딱 6개월만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는 7월에 학교를 휴직했다. 그 무렵 빵집은 월 매출이 50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인건비조차 제대로 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무언가 커다란 전환이 필요했다. 장 대표는 지인들에게 파이, 쿠키를 반강제로 떠안기며 월 매출을 1500만원으로 올려놓았다. 그렇게 일단 한숨을 돌려놓고, 빵집을 살리면서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늘릴 새로운 방안을 궁리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팔 것이냐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어요. 비빔빵 외에는 답이 없었어요. 할머니들과 함께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빵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전주에는 전국에 유명한 비빔밥이 있으니 전주와 한국을 상징하는 비빔빵을 만들 수만 있다면,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식이섬유가 많고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를 쓰고, 마요네즈가 아니라 고추장 소스를 쓰니 건강빵으로도 손색이 없고, 외국인도 식사 대용으로 먹을 만하다고 봤어요. 비빔빵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가치도 있고 수익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다들 비빔빵은 만들 수가 없다고들 하더군요.”
실제로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채소에 수분이 많아 빵이 터지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빵이니까, 고로케처럼 튀기지 말고 반드시 오븐에 구워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채소 따로, 고추장 따로, 빵 반죽 따로 시험에 시험을 거듭했다. 레시피를 크게 12번이나 바꿨다. 100번 넘게 새로운 시도를 하고서야 비빔빵을 구워내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처음엔 수분 조절이 어려워 밥을 전혀 넣지 않았지만, 지금은 반숟가락(4%)가량의 현미를 넣는다.
비빔빵에는 돼지고기, 콩나물, 당근 등 비빔밥 고명으로 쓰이는 15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재료는 반드시 지역사회에서 조달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대파 넣은 스콘, 전주떡갈비빵도 개발
재료는 소비자의 건강을 우선 고려하고, 반드시 지역사회에서 조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비빔빵에는 돼지고기, 콩나물, 당근 등 비빔밥 고명으로 쓰이는 15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채소는 전주 중앙시장에서, 고기는 전주 모래내시장에서 지역 생산물을 사다 쓴다. 고추장은 장 대표의 고향인 장수군 번암면에서 할머니들이 태양초 고추장과 엿기름을 이용해 가마솥에서 전통 제조법으로 만든 것을 갖다 쓴다. 밀은 우리밀영농조합에서 국산 밀을 갖다 쓴다. 통밀은 고창에서 재배한 것을 사온다.
비빔빵에 대한 반응은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2015년 말부터 비빔빵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고, 친환경 몰에서 공동구매를 해갔다. 그리고 2017년에는 비빔빵이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구매 품목이 되었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줄을 서서 비빔빵을 사간다. 전주한옥마을에 오는 외국인들과 젊은이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비빔빵을 먹는다. 온라인 주문도 밀려들었다.
“우리 밀은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았고, 농약을 치지 않고도 재배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 체질에 아주 잘 맞아요. 그리고 우리는 천연효모를 쓰지요. 밀로 만든 빵인데 먹어도 속이 편하니까, 사람들이 할머니 단팥빵이나 비빔빵을 더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밀은 찬 성분인데, 비빔빵은 채소를 감싸야 하니까 조금 따뜻해야 해요. 그래서 통밀을 적절히 섞어 만들죠.”
비빔빵은 1개(140g 이상) 소매가격이 3천원이다. 다른 종류의 빵과 함께 2만원짜리, 3만원짜리 세트를 판다.
장 대표는 비빔빵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2016년 상반기, 남원 유기농가에서 생산한 대파가 판로를 잃어버린 것을 보고는 대파를 넣은 스콘을 개발했다. 2017년에는 채소와 궁합이 맞는 고기빵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주 떡갈비빵을 개발했다.
성장 속도가 아주 빨랐다. 매장을 넓혔고, 지난해 말엔 전주한옥마을에 6평짜리 판매장도 열었다. 사회적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에스케이(SK)그룹은 2013년 천년누리 전주제과가 처음 출범할 때 적잖은 도움을 주었고, 비빔빵을 개발한 뒤에는 홍보를 도와줬다. 월 500만원에 그치던 매출이 이제 월 1억원을 웃돈다. 매출의 절반은 비빔빵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윤은 거의 남지 않는다. 재료비로 거의 절반이, 인건비로 나머지 절반이 나가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적기업과 달리,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전액 인건비를 직접 지출하는 고용인력이 많은 까닭에 전체 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다 보니 시설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성능 좋은 오븐도 없고 포장 기계도 없어서 온통 수작업으로 일을 하느라 지난해 여름엔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기도 했다.
“작년 7월까지 중고 오븐 1대를 갖고 빵을 구웠어요. 기적 같은 일이었죠. 이제 겨우 3천만원짜리 오븐을 새로 들여놨네요.”
장 대표는 보통 새벽 4시에 출근한다. 주문이 많을 때는 새벽 2시에 나오기도 한다. 대표로서 주문을 정리하고 재료를 조달하고 회계 처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빵을 성형하고 매장에서 판매하는 일까지 거의 모든 일에 전방위로 나서야 한다. 처음엔 대표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됐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나누는 사람들’ 쪽에서 빵집을 인수해 사회적기업으로 만들 때 장 대표가 가장 많은 액수를 투자했지만, 이익을 남겨 배당할 생각은 아예 없다.
가게 안 풍경. 성능 좋은 오븐도 없고, 포장 기계도 없어서 온통 수작업으로 일을 하느라 지난해 여름엔 하루 16시간씩 일을 했다.
가게 매장에 진열된 여러 종류의 빵. 비빔빵 이외에도 떡갈비빵도 개발해 판다.
취약계층 고용 갑절 늘리는 게 목표
천년누리 전주제과는 2016년 11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할머니들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늘리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애초 꿈꾸었던 대로, 고용을 크게 늘리는 데 성공한 것이 장 대표는 무엇보다 뿌듯하다. 천년누리 전주제과는 5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30명이 일한다. 그 가운데 할머니들이 10명이다. 월 16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 취약계층 고용인력을 내년까지는 지금의 갑절로 늘리자는 게 장 대표의 새로운 목표다.
“월 매출액이 350만원 늘어날 때마다 1명씩 고용을 늘리기로 했어요.”
매출 350만원 가운데 절반이 인건비이니, 이윤은 고려하지 않고 일자리부터 먼저 늘리겠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저한테 고용을 위해 빵을 굽는 이상주의자라고 하던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실행에 옮기려면 비빔빵이 더 많이 팔려야겠죠.”
직접 고용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간접 고용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장 대표는 생각한다. 천년누리 전주제과는 장수의 할머니들이 만든 고추장을 사다 쓴다. 팥도 장수에서 생산한 것을 연간 5t가량이나 사다 쓴다. 장수 팥은 고랭지에서 재배한 것이라 달지 않고 씹히는 맛이 있다. 비빔빵 모둠세트에 들어가는 초코파이는 일거리가 없는 사회적경제 빵집 두곳과 자활센터 두곳에 주문해서 만든다. 전주비빔빵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간접 고용 창출도 많아지고 있다.
천년누리 전주제과는 지난해 12월 ‘성장’ 분야 ‘한국 사회적기업상’을 받았다.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처음 제정한 상으로, 사단법인 신나는조합이 주관하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씨티은행이 후원한 상이다.
비빔빵은 요즘 하루에 2천개를 만든다. 재고는 남지 않는다. 공급받기를 원하는 곳이 많은데, 더 생산할 여력이 없다.
지속가능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시설을 확장하고 설비를 들여 비즈니스 도약을 해야 하는데 공장을 지을 공간도 없고 자본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빚을 내기는 싫다. 재료를 대달라거나, 판매를 할 테니 프랜차이즈 가맹점으로 만들어달라는 곳도 있다. 가볍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 선뜻 손을 잡지 않고 있다. 고령자 등 사회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비빔빵을 한국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가야 할지, 요즘 장 대표의 고민이 깊다.
전주/글·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