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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트럼프 따라가는 바이든…동맹국 쥐어짜 미국 경제 수혈

등록 2022-09-05 05:00수정 2022-09-05 15:20

[뉴스분석] 자유무역 뒤흔드는 미국
인플레 감축법 등 자국만 우대
‘미국 우선주의’로 공급망 재편
동맹 산업 흡수해 일자리 창출
백인 노동자층 위한 정책 집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윌크스배리/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에서 총기 규제 강화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윌크스배리/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을 재건하며 납세자들 돈을 쓸 때 우리는 미국산을 사겠다. 미국인들 일자리를 지지하기 위해 미국산을 사겠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3월1일 연두교서(국정연설)에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강조했다. 항공모함 갑판부터 고속도로 가드레일용 철강까지 모두 미국산을 쓰겠다고 했다. 또 “더 많은 차와 반도체를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다짐은 지난달 ‘칩과 과학법’(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발효로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산 철강만을 쓰도록 한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도 포함하면 인프라·전기차·반도체에서 미국산을 강조한 연두교서 내용이 착착 실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쟁력 강화와 중국 견제를 명분으로 내건 입법 드라이브는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동맹에 대한 차별과 소외로 역풍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북미산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약 1천만원) 보조금을 준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차별 금지 규범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의 최혜국대우 조항 위반이라는 논란을 만났다. 한국이 대응에 나서고, 유럽연합도 “외국산 차별”이고 “세계무역기구와 양립하기 어려운 법률”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 비중을 올리려는 목표와 중국 견제 의도가 어우러져 ‘제3국 투자 금지 조건부 보조금’이라는 생소한 기업 활동 제한 규정을 담은 ‘칩과 과학법’도 논란거리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 비중은 1990년 37%였으나 지금은 12%까지 떨어졌는데,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할 예정인 삼성전자나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중국 사업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미국은 생산 능력을 고려해 자국산 비율을 조정하는 계산적 모습도 숨기지 않는다. 백악관은 5500억달러(약 749조원)를 투입하는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을 두고 미국산 철강만 쓰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하면서 다른 제조품들은 55%만 미국산으로 채우도록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전기차 배터리 조항에서도 소재·부품·시기에 따라 미국산 비율을 단계적으로 올리도록 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칩과 과학법’의 연결고리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주도면밀함을 보여준다.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가 신차의 절반을 차지하고, 그 상당량을 미국에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반도체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이다. 국가·기업 간 경쟁이 치열하고 고임금 일자리가 많은 반도체, 배터리, 완성차의 미국 내 생산을 유기적으로 확대하는 ‘큰 그림’ 속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미국 안팎의 전문가들은 생산시설을 유치하려고 동맹을 소외시키고 자국산을 대놓고 우대하는 것은 공급망 재편 전략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견제 필요성을 계기로 추진된 공급망 재편은 생산기지의 미국 이전과 동맹·파트너 국가들과의 공급망 협조 강화가 두 축이다. 이 중 생산시설 끌어오기에 무게를 두면서, 외국으로 나간 기업의 본국 회귀를 뜻하는 ‘리쇼어링’을 뛰어넘어 동맹국 생산시설까지 빨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국내 정치도 이런 ‘경제 민족주의’의 배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층에 호소하는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패한 데는 백인 노동자층의 개방적 무역정책에 대한 반감이 컸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은 ‘칩과 과학법’ 서명식에서 “우리는 일상적 비용을 낮추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반도체 칩을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며 ‘일자리’를 거듭 강조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의 흐름이 바이든 행정부까지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는 2차 대전 뒤 자국이 주도한 자유무역 질서에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 전체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통상 매파’로 불리는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해 인준청문회에서 ‘관세와 무역장벽 제거에 중점을 둘 것이냐’는 질문에 “5년이나 10년 전이면 그렇다고 답했을 것 같은데, (중략) 가장 최근 역사를 볼 때 우리 무역 정책은 아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며 자유무역 정책으로부터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세계화의 적들이 배회하고 있다”는 제목의 <파이낸셜 타임스> 최근 칼럼은 “10년 전만 해도 미국 정치에서 보호주의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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