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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중국 포기하고 공급망 재편 도왔더니…“미, 한국 등에 칼 꽂아”

등록 2022-09-05 05:00수정 2022-09-06 17:47

정부, ‘미 인플레 감축법’ 대책 부심
윤 정부 한-중 관계 희생해가며
미 주도 IPEF·칩4 등 참여했지만
되레 ‘아메리카 리스크’ 직격탄

미, ‘중국과 전략경쟁에 매달려’
입법 수정·유예 쉽지 않은 상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 연합뉴스

“한국이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을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미국 <블룸버그> 뉴스는 지난 2일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 발효로 인해 한국이 받은 충격을 ‘배신을 당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유지해 온 미-중 균형 외교 노선을 접고, 미국이 추진해 온 공급망 재편 움직임 등에 적극 호응하며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 워크 가입 △칩4 참여 등 쉽지 않은 결단을 이어왔지만, 결과적으로 낭패를 당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 법으로 인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10%대로 올리려던 현대·기아차가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고, 앞서 만들어진 ‘칩과 과학법’을 통해선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삼성과 하이닉스가 보조금 혜택을 받으려면 중국에 신규 투자나 생산라인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됐다. 이 매체와 인터뷰에 응한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도 한국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이라 표현하면서, “미국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했으니 한국 정부나 국민들은 시장 접근성이란 측면에서 그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고 밝혔다.

한국에 이번 사태는 말 그대로 ‘등 뒤에 칼’이라 할 수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시작되며, 한국이 처음 마주하게 된 ‘사건’은 사드 사태였다. 2016년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는 문제가 불거진 뒤, 한-중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은 한국에 ‘한한령’이라는 이름의 경제 보복을 가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갈등이었다.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돼 자국의 안보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한 중국이 ‘보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가 정말 한국에 이익인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스스로 내린 판단에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각오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엔 갈등의 중심축이 사드 같은 ‘전통 안보’에서 ‘경제 안보’로 바뀌게 된다. ‘가치 외교’를 내세우는 윤석열 행정부는 이에 적극 동참했다. 기업들도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재편’ 작업에 호응하며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쏟아냈다. 하지만 자국을 우선시하는 미국의 입법으로 인해 선의를 갖고 내린 판단이 타격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과 전략 경쟁을 명분으로 삼아 반도체와 전기차 등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미국의 결심이 워낙 강해 이를 바꾸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도훈 외교부 제2차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대차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이 2025년 완공될 때까지 이 법을 유예할 수 없는지를 미국에 집중 요구해야 한다’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2025년까지 일종의 잠정적 조치라도 하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 요구를 처음 한 시점은 미 의회에서 법이 최종 통과(지난달 16일)되기 전으로 한국의 요구는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합동대표단의 미국 방문(지난달 29~31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1일) 등을 통해 미국에 꾸준히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으로부터 똑 부러진 답을 얻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은 회담 이후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한국산 전기차를 미국의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제이크 설리번 보좌관이 “우리 모두 집에 돌아가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해 숙독을 해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설리번 보좌관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전기차에 국한된 게 아니라 자유주의 국가들 간 공급망 문제 재정립에 대한 전략적 방향성이 담겨 있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을 더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간의 전략 갈등에 맞서기 위해 갓 만들어진 법을 한국의 이해를 위해 수정하긴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백악관도 이날 만남에 대한 자료를 내놨지만, 한국이 강조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에 대한 우려’는 언급하지 않았다. 8~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인·태 경제프레임워크 장관급 회의에 참여하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회의 뒤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행정부 고위급과 전기차 보조금 문제를 추가 논의할 예정이지만,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긴 힘든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을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1일 자료를 내어 미국의 잇따른 입법으로 이번주(8월28~9월3일)에만 마이크론, 도요타, 혼다 등이 미국에 새로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며 “우리는 미래에 전기차, 반도체 칩, 광학 섬유와 다른 핵심적인 부품들을 여기 미국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길윤형 기자,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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