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18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뮌헨/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영공을 침범한 중국 기구가 격추당한 지 2주일 만에 양국 외교 수장이 만나 기구 이용 정찰 논란,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갈등,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첨예하고 광범위한 현안들을 논의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은 18일(현지시각) 독일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를 계기로 회동했다. 애초 블링컨 장관은 이달 5~6일 베이징을 방문해 왕 주임 등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기구 사건 돌출로 방중 계획을 취소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고고도 정찰 기구가 영공을 침범해 주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했으며, 무책임한 행동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또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어떤 주권 침해도 용납할 수 없으며, 5개 대륙의 40개 이상 국가의 영공을 침범한 중국의 고고도 정찰 기구 프로그램은 세계에 실체가 폭로됐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중국이 러시아를 물질적으로 지원하거나 러시아의 제재 회피를 돕는다면 그에 따른 영향과 대가가 있을 것임을 경고했다”고도 밝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놓고는 “심각한 국제적 도전에 대해 책임 있는 강국들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블링컨 장관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은 불변이라는 점과 “대만해협이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말했다고 한다. 또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겠지만 “충돌을 원하지 않으며 냉전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외교적 대화 지속과 항상적 소통 수단 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프라이스 대변인은 전했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블링컨 장관이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입장을 밝혔고, 중국의 러시아에 대한 지원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면서는 “직설적”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왕 주임이 기구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부적절한” 반응을 보였다고 <엔비시>(NBC)에 말했다.
<신화통신>은 왕 주임은 기구를 미사일로 격추한 행위에 대해 블링컨 장관에게 “과도한 무력 사용이 미-중 관계에 끼친 손상”을 인정하고 태도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왕 주임은 블링컨 장관을 만나기 전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도 기구 격추를 “우스꽝스럽고 히스테리컬한” 행위라고 비난하며 “그것은 미국이 강한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다른 많은 나라들이 보낸 많은 기구가 하늘에 떠있는데 그걸 다 격추할 것이냐”고도 했다. 또 미국은 “중국을 탄압하고 비방하려고 모든 수단을 쓰면서 다른 나라들도 그러도록 끌어들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입장을 재강조하기는 했으나, 양국 관계를 급작스럽게 더 악화시킨 기구 사건의 파장은 이번 회동을 통해 상당 부분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본격적 지원 가능성이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떠올랐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방영된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의 전쟁 지원을 위해 비살상용 물자를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들이 살상용 물자도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중국이 어떤 무기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는 “탄약부터 다른 무기들까지 모든 것”이라고 답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이번 회의 연설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하며 중국의 대러 지원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북한과 이란이 러시아의 잔인한 전쟁을 지원하려고 무기를 보내고 있다”며 “전쟁 개시 후 베이징과 모스크바가 관계를 강화하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왕 주임은 이번 연설에서 중국은 “모든 나라들의 주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정치적 해법을 곧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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