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뉴욕 맨해튼의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점포 앞을 보행자가 지나가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금융 당국이 폐쇄된 은행들의 예금 전액 반환을 보장하는 등 특단의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13일(현지시각) 지역 은행들 주가가 대폭락했다.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해온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달 말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이 잇따라 폐쇄된 후 첫 거래일인 13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0.28%, 에스앤피(S&P)500지수는 0.15% 떨어지는 데 그쳤다. 주말 사이에 금융위기 공포까지 거론된 것을 감안하면 선방했다. 전날 미국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 연방예금보험공사는 불안 심리 확산과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 재연을 막으려고 두 은행 예금을 기존 범위(1인당 25만달러·약 3억2600만원)를 넘겨 전액 보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개점 전부터 점포 앞에 줄을 선 예금주들은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두 은행을 정리하려고 만든 ‘가교은행’을 통해 돈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은행권 주식은 지역 은행들을 중심으로 대폭락세를 보였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62%, 웨스턴얼라이언스는 47% 폭락했다. 다른 여러 지역 은행들 주가도 20% 이상 고꾸라졌다. <블룸버그>는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이후 유럽 등지의 은행들도 영향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금융권 주식 가치가 4650억달러(607조5690억원) 증발했다고 집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증시 개장을 30분 앞두고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 “필요하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불안 심리 진화에 나섰지만 규모가 비교적 작은 은행들에 대한 의심을 잠재우지 못했다. 대형 금융회사인 찰스슈와브(11.6%)나 뱅크오브아메리카(5.8%) 주식도 크게 떨어졌다. ‘안전 자산’ 선호 심리에 채권으로 돈이 몰리면서 2년 만기 재무부 채권 금리는 0.59%나 떨어졌다. 미국 증시가 하루 최대 하락률(22.6%)을 기록한 1987년 10월19일 ‘블랙 먼데이’ 이후 가장 큰 채권 금리 하락폭이다.
특히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세 번째로 폐쇄되는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에 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자산 규모가 2130억달러인 이 은행은 12일에도 연준과 제이피모건체이스은행에서 700억달러를 지원받았다고 밝혔지만 주식 투매를 막지 못했다. 이 은행의 마이크 로플러 최고경영자는 자신들은 유동성이 풍부하다고 주장하는 성명도 냈다. 하지만 예금보험 대상이 아닌 예금 비율이 68%로, 앞서 폐쇄된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중급 규모 은행들 중 세 번째로 높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맡긴 돈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예금주들이 급증하면 뱅크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2일 기준금리 조정을 발표할 연준의 고민과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일 상원에 출석한 제롬 파월 연준 이사회 의장은 고용시장의 열기가 물가를 계속 자극한다며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1일 0.25%포인트 인상으로 숨을 고른 연준이 0.5%포인트를 올리는 ‘빅 스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금리 급상승이 은행들이 보유한 채권 가치를 떨어뜨려 재무 구조를 악화시켰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물가만 보고 통화정책을 펴기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은행 시스템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연준이 22일에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무라증권은 한발 더 나아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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