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입국 금지 조처를 발표했다. 미국이 일부 이스라엘인들에 대해 이례적 제재를 가한 것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에 관해 신중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백악관이 받는 압력을 덜어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5일 성명을 내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스라엘인들과 그 직계 가족에 대해 비자 제한 조처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서도 같은 제재를 가한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공격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공격에 일관된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적 공격을 가한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기본적 서비스와 필수품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행위도 제재 대상이라며 “이스라엘은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강조했다.
미국 국무부는 제재 대상과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이스라엘인 수십 명의 미국 입국이 금지됐다고 전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기존 미국 비자 보유자는 그 효력이 무효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서안지구의 극단주의적 이스라엘인들을 제재한 것은 빌 클린턴 행정부 이래 처음이다.
서안지구 정착촌에 사는 극단주의적 이스라엘인들은 하마스의 10월7일 이스라엘 공격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총격 등 보복적 성격의 공격을 가해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이를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비난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제재 부과 방침을 밝혔다.
이번 제재에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가해지는 가자지구 밖으로 분쟁이 확대되는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에 의한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이 계속 불어나는 상황에서 즉각적 휴전을 요구하지 않는 미국 정부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자 이를 조금이라도 무마해보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담았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이스라엘 쪽이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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