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 이란과 직접 충돌 우려도 커져
“우리 나라의 기반이 되는 가치는 버려지고 정치적 생존, 다툼, 선동이 이를 대체했다. 우리에겐 이를 바로잡을 힘이 있다.”
넉달째에 접어든 가자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10월7일 형제를 잃은 이스라엘 시민 노암 알론은 20일 텔아비브의 거리로 나섰다. 이날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알론은 일간 하레츠와 한 인터뷰에서 “정부는 이제 (전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과 그의 집안 사이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0년 전인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 때 그의 할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
이날 텔아비브 거리에 나온 이스라엘 시민 수천명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고 외쳤다. 북부 하이파, 예루살렘 등에서도 수백명이 모였다. 인질 가족 수십명도 북부 카이사레아(가이사랴)에 있는 네타냐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진을 쳤다. 이들은 거리에 텐트를 설치한 뒤 밤을 지새웠다. 한 인질의 아버지는 “(이대로 가다간) 네타냐후의 이름을 딴 묘지만 남을 것”이라며 정부를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시위대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무능한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어가고 있는 이번 전쟁을 그만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스라엘군 예비역 소장인 님로드 셰퍼는 하이파 시위에서 전시 내각을 향해 “정부에 복종할지, 자리를 떠나서 시민을 위해 일할지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전시 내각 구성원이자 야당 소속인 가디 아이젠코트 의원은 앞선 18일 하마스 공격에서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네타냐후 총리의 책임을 지적하며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부적으로는 사임 요구에 맞닥뜨려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과도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는 미국이 가자 전쟁의 전후 처리 계획으로 내세우고 있는 ‘두 국가 해법’(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만들어 이스라엘과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한다는 해법)에 대해 사실상 반대한다는 의견을 거듭 쏟아내는 중이다. 미 백악관은 19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 간의 전화회담 결과를 전하며 “‘두 국가 해법’을 포함한 전후 구상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20일 엑스(X·옛 트위터)에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완전히 통제하는 문제를 놓고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팔레스타인 국가에 반대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이란 등 주변 적대 세력과 전면 대결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20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메제 지역을 공습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대원 5명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보복을 예고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같은 날 국영 라디오에서 “시온주의자 정권의 범죄”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사이의 충돌이 거듭되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 예멘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이 이어지는 홍해까지 확대됐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공언한 만큼 자칫하면 서로를 숙적이라 부르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직접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