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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억만장자들 ‘정책 구매’ 통로 역할 표현의 자유 최대한 보장 취지 무색

등록 2016-03-01 19:56수정 2016-03-20 23:13

조성대 교수의 미 대선 깊이 보기
④‘슈퍼팩 돈 잔치’

정치에서 돈 얘기는 이른바 ‘검은 돈’을 연상시키며 불쾌감부터 던져준다. 하지만, 정치에서 돈은 정치적 견해를 개진할 수 있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다. 또 시민들이 정치인이나 정당에 돈을 기부할 수 있는 권리는 표현의 자유 영역 차원에서 보호받아 왔다. 그런데 두 가지 쟁점은 미국 정치에서 돈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기업·노조 ‘팩’ 통한 기부 제한 풀어
재벌들 기부 정치자금 절반 육박
양당 주류 부시와 클린턴에 쏟아져

첫째, 돈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치적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시민들의 주권은 평등하고, 따라서 정치 영역에서 평등한 목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은 개인이나 단체가 기부할 수 있는 정치자금 총액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현재 개인은 한 후보당 2700달러까지, 그리고 정치활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이하 팩)에는 5000달러까지 기부할 수 있다.

둘째, 기업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민감한 이익단체들의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현재 한국에서는 정치에 대한 불평등한 영향력과 정치권의 부패 위험 때문에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단체를 결성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가 있고 법인격을 지니는 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지닌다는 미국의 정치 전통은 이들의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하고 있다. 다만, 단체의 재정으로 기부하는 것을 금하기 위해 ‘팩’을 구성해 회원의 기부를 모아 팩의 이름으로 전달하게 했다. 한 후보자당 5000달러까지, 정당에는 1만5000달러까지 기부가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주권적 평등성과 표현의 자유가 절묘하게 타협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0년 미국 보수적 시민단체인‘시민연대’(Citizen United)와 ‘지금 말하라’(SpeechNow)가 각각 제기한 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주권적 평등성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판결의 요지는 특정 후보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기업이나 노조의 ‘팩’을 통한 정치적 지출에 총액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기업이나 노조의 총액제한 없는 독립 지출의 통로가 되는 ‘슈퍼팩’이 탄생했다. 이로써 개인 및 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억만장자들에게 무제한의 지출과 무제한의 영향력의 길을 열어주게 됐다.

이번 미국 대선 통계는 큰손이 누구에게 향하고 무엇을 목표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2월1일 현재 전체 대선 후보들이 모금한 정치자금은 약 8억4300만달러이고 이중 슈퍼팩을 통한 모금액은 약 3억6300만달러로 약 43%를 차지한다. 즉, 몇몇 재벌들의 거액 기부가 정치권으로 향하는 돈의 절반에 육박하며, 이는 현재 미국의 정치자금 제도가 소액 기부를 활성화해 개미들의 목소리를 보장하겠다는 제도의 취지로부터 벗어나 부자를 위한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슈퍼팩 자금의 86.5%가 친시장적 이념을 가진 공화당 후보들에게 쏟아졌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왜 자신의 피같은 돈을 기꺼이 내놓는지 쉽게 짐작하게 한다.

또다른 특징은 슈퍼팩의 모금이 소위 인사이더들을 조준한다는 점이다. 전체 모금액의 34%와 13%가 각각 양당의 주류인 젭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에게 쏟아졌다. 결국 슈퍼팩은 표현의 자유를 등에 업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손쉽게 구매하려는 억만장자들의 정치적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검은 돈이 그만큼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까? 널리 알려진 이론은 선거에서 지출이 증가할수록 후보의 인지도가 비례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지도는 일정 수준까지는 득표율과 함께 오르지만 인지도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득표는 성장을 멈춘다. 따라서, 저명한 후보일수록 지출한 돈만큼 표를 끌어모으지 못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단적인 사례로 젭 부시 후보를 위한 슈퍼팩은 2월1일까지 총 모금액 1억2400만달러 중 9900만달러를 정치 광고에 쏟아 부었지만 정작 부시는 세 차례 경선에서 단 한 차례도 3등 안에 들지 못했다. 결국 그는 후보직에서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원한 후보자가 당선되는 날엔 ‘대박’이 기다리고 있기에 억만장자들의 분산투자는 끊이지 않고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는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물론 이러한 돈과 정치의 유착관계를 끊고자 하는 혁신의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슈퍼팩이 워싱턴과 월가를 연결시켜주는 통로로, 워싱턴을 밑바닥으로부터 오염시킨다며 자신은 슈퍼팩으로부터 일체의 기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다. 2월1일 현재 그를 향한 20달러짜리 개미들의 반란은 약 7500만달러로 결코 적지 않다. 그의 실험이 과연 성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조성대 조지워싱턴대 방문교수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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