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3월 말~4월 초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찍은 사진. 폼페이오 장관은 8일(한국시간 9일) 북한을 재방문했다. 백악관 제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9일 전격적인 재방북에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위험 신호’가 예상보다 강했다는 배경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둘러 고위급 수준에서 쟁점을 타결하지 않으면 사상 첫 정상회담이 상당 기간 연기되거나 무산될 수도 있다는 미국 쪽의 위기감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에서는 최근 며칠 사이 북-미 간 사전 협상 과정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는 여러 ‘미확인’ 소문이 흘러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여러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 결정이 끝났다”고 했는데도 차일피일 발표가 미뤄진 탓이다.
워싱턴 싱크탱크 사이에선 정상회담 장소·시기 발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2일 워싱턴 회담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문 대통령의 ‘중재’를 기다려야 할 만큼 북-미 사전 조율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관측이었다.
일부에선 ‘6월 초’로 사실상 확정된듯 보였던 정상회담의 연기설 혹은 취소설을 거론하기도 했다. 정상회담 취소는 양쪽 모두에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많긴 했지만, 그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지난 주말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의 석방 신호가 나왔다가 사라진 점도 좋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인 석방 문제는 정상회담의 사전 분위기를 조성하고 북-미 신뢰를 구축하는 첫 단추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기류를 공식화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미국이)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발표 이후 북한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한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에 더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에 강력한 ‘경고성 시위’를 했다.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은 북-미 간 이견이 심각하게 노출됐던 원인은 ‘의제 설정’ 문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소·시기 협상은 의제와 긴밀히 연동돼 있기 때문에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비핵화 조처와 이에 상응하는 제재의 해제 시점 등을 둘러싼 갈등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 진행 사정에 밝은 한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이 다시 이른바 ‘리바아 방식’을 꺼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비핵화 완료까지는 어떤 제재 완화도 없다는 미국의 입장을 ‘일방적 항복’ 요구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또한 북한은 비핵화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넘어 중·단거리 미사일이나 생화학무기, 인권 문제 등으로 의제를 확대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5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만난 뒤 미국의 입장이 강경하게 돌아선 점 등을 들어 배후에는 일본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신문>은 8일 논평에서 “아베 패당이 미국의 대조선 제재·압박에 동조하며 날뛰는 것은 조선반도 정세 완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을 보면, 이날 하루에만 일본을 비난하는 기사와 논평이 네 개가 쌓여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 끼어들지 말라는, 일본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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