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의 사상 첫 북-미 회담이 코앞에 다가오며 의전 준비에 비상이 걸렸다.
싱가포르 정부가 6·12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샹그릴라호텔 주변을 ‘특별행사지역’으로 4일 지정했다. 이 호텔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담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 내무부는 이날 관보를 통해 샹그릴라호텔 주변 탕린 권역을 10~14일 특별행사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크게 4각형으로 짜인 특별행사지역은 정중앙에 샹그릴라호텔이 있고, 그보다 남쪽에는 역시 고급인 세인트레지스호텔이나 포시즌스호텔도 자리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싱가포르 경찰은 특별행사지역 내 일부 지역을 ‘특별구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특별구역에서는 사람과 차량 검문을 실시하며, 깃발·현수막·폭죽·인화물질 반입이 금지된다고 전했다.
그동안 회담장 후보로 거론된 센토사섬이나, 북한 실무협상단 숙소인 풀러턴호텔은 특별행사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북-미 정상이 특별행사지역 내에서 숙박과 회담을 모두 진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상회담장으로 유력한 샹그릴라호텔은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첫 양안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며, 해마다 이곳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1~3일 진행됐다.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양쪽의 의전 준비에도 비상이 걸렸다. 북-미 정상이 만난 전례가 없어 모든 의전 관행을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3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12일 싱가포르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양쪽 당국자들이 밤새워 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론적으로는 전통적인 외교 프로토콜을 적용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양쪽은 경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아직 전쟁 상태인 북-미 지도자가 만난다는 이유도 있지만, 양쪽 모두 신변 안전에 철저한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국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까다롭기로 유명하고, 북한도 최고지도자에 대한 안전에 민감하기로 소문나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과 중국을 벗어난 장거리 해외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만큼 제3국 경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제3국에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참고서’도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 경호 계획은 미국 비밀경호국, 북한 당국, 싱가포르 보안당국의 3국 간 협조 체제 속에서 마련되고 실행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북-미 양쪽은 도·감청 가능성 등 상대나 제3국의 첩보 행위도 차단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 긴장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요주의 대상이다.
‘스킨십’과 관련해선 공격적 악수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한테도 ‘악수 대결’을 할지가 관심이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북쪽 판문점으로 넘어가거나 강하게 포옹을 한 김 위원장의 스킨십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먼저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를 알린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전 중국 주석의 1972년 베이징 회담 때 두 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몇차례 악수와 미소를 주고받은 ‘프로토콜’이 역사적으로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회담 장소가 확정되면 양쪽 의전 담당자들은 테이블 크기에서부터 좌석 배치, 마실 물의 종류, 국기 크기 등을 정해야 한다. 심지어 테이블 위에 배치될 장식용 꽃이 알레르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도 점검한다. 메뉴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회담 개최지인 싱가포르 전통 식단이나 쇠고기, 쌀처럼 양쪽의 공통된 메뉴 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아울러 정상 간 접촉이 이뤄지는 방마다 복수의 출입구가 갖춰졌느냐도 중요한 회담장 선정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동시에 입장할 수 없을 경우 어느 한쪽이 먼저 도착해 상대방을 기다렸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손님맞이’ 개념이 적용될 수 없는 3국 개최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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