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싱가포르/신화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 목표와 관련해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이란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에서 ‘미국이 실패한 협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북한의 공식 발표의 행간을 살펴보면, 미국이 북한의 거부감을 감안해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명분’을 주는 대신, 실질적 조처를 약속 받으며 ‘실리’를 챙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비핵화와 관련해 ‘4·27 판문점선언’보다 진전된 표현을 담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김 위원장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공약을 확인했다”고 명시했다. 판문점선언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구절과 비교하면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로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비핵화 약속을 두고 북한이 비핵화 이행과 함께 검증까지 수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행정부가 주장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시브이아이디)란 용어에서 ‘검증 가능한’(V·verifiable)을 대체하는 용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13일 싱가포르 스위소텔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토론회 뒤 <한겨레>에 “검증이란 용어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을 의식해 이를 풀어쓴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이행과 검증 문제에서 북한이 확실한 약속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공동성명에 ‘브이’(V)가 들어가지 않은 것은 시브이아이디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지 부시 대통령 때 나온 이 용어에 대해 북한은 체제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해왔다. 또한 북한이 실무협상 과정에서 ‘완전한’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막판까지 반대했던 점에 비추면,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담판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검증 문제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그는 “완전한 비핵화를 검증할 것이고, 우리는 많은 사람을 투입할 것”이라며 “(검증은) 두 가지(미국이 하는 것과 북한이 하는 것)가 조합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증에 많은 사람을 투입한다는 것은 ‘조속한 비핵화’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는 뜻이고, 미국이 검증한다는 것은 공개된 핵시설뿐 아니라 핵탄두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가역적인’(I·irreversible)이란 표현도 공동성명에서 빠지긴 했지만, 북-미 정상 간에 이에 대한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안에서 12일(현지시각) 올린 트위터를 통해 “더 이상의 미사일 발사도 (핵·미사일) 연구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실험장도 문 닫는다”고 강조했다. ‘연구’와 관련된 인력의 전직이나 자료 등의 폐기는 불가역적 비핵화 조처의 핵심으로 꼽힌다. 김준형 교수는 “공동성명에 드러난 것보다는 그 이면에 시브이아이디(CVID)와 체제 보장에 관해 훨씬 많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취할 비핵화 초기 조처도 포괄적 원칙과 방향성만을 담은 공동성명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북-미 양쪽이 향후 모종의 조처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그들은 특정한 탄도미사일 시험장과 함께 다른 많은 것들을 제거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추후 공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13일 김 위원장이 회담에서 “미국 쪽이 조-미(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 구축 조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처들을 취해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정상회담 직전 실무회담에서도 양쪽이 ‘아이시비엠 폐기’에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가 일정 기간 신뢰의 시험대를 거친 뒤 의외의 조처들을 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싱가포르/이용인 특파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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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세기의 담판’ 6·12 북-미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