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 비핵화’에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을 사실상 비핵화 시한으로 제시해온 그동안의 입장과 달라진 것이어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취임 2개월을 맞아 25일 <시엔엔>(CNN) 방송과 진행한 전화 인터뷰에서 “2개월이든 6개월이든 그것(비핵화)에 대해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미 정상이 제시한 것들을 달성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신속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미 사이에 수십년간 긴장이 이어졌는데 정상회담이 끝난 지 2주도 안 돼 구체적 로드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인식도 밝혔다.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국방부 당국자가 전날 익명으로 북한에 특정한 요구 사항과 시간표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와 결이 꽤 다르다. 폼페이오 장관 스스로도 13일 기자간담회에서 “2년 반 안에 중대한 비핵화 같은 것이 달성되길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신속한 비핵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시한을 못박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후속 협상을 앞두고 북한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모양새를 피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2년 반 남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중대한 비핵화’가 기술적으로도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시한을 공표했다가 달성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데이나 화이트 미국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국방부는 구체적 시간표가 없는 상황에서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금의 북-미 간 외교 과정을 지지한다”며 폼페이오 장관에게 다시 보조를 맞췄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북-미 양쪽 모두에 후속 협상을 위한 물리적 상황이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북한은 아직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를 미국에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과 내부 평가 등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정도 마찬가지다.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부처 간 태스크포스(TF)를 이끈 앤드리아 홀 대량파괴무기·비확산 담당 선임국장이 국가정보국으로 원대 복귀해 내부 정비가 필요하다. 국무부에서 실무회담을 이끈 성 김 주필리핀 대사가 북핵 협상 총괄 업무를 고사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마크 램버트 한국과장은 몇달 전 이미 다른 보직을 받아 북핵 업무를 계속하려면 다시 인사를 내는 게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후속 협상 시작이나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처는 다음달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쯤에나 나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군 유해 인수를 위해 소수의 미국 쪽 감식 요원이 북한에 머물고 있지만 비핵화 협상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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