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1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 왕세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진행해 오던 수교협상을 중지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침공 위기가 중동 주요 국가들 간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14일(현지시각) 사우디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 협의를 중단키로 결정했고, 이를 미국 관리들에게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이 리야드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만난 날 이런 사실을 전해 이 회담을 통해 ‘수교 중단’ 통보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가 계속 수교협상을 이어가는데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외교부는 블링컨 장관과 회담 직후 “가자지구와 그 주변에서 즉각적 휴전”과 긴급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했다. 파르한 장관은 지금은 “충격적이고,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상황의 주된 고통자들은 민간인들이고, 양쪽의 민간인들이 영향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도 앞선 10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전화통화에서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갈등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13일에도 가자지구 내의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최근 속도를 내고 있던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를 막으려는 목적 등을 위해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 2021년 모로코·수단과 수교한 뒤 최근엔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수교협상을 벌여 왔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지난달 20일 방송된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협상에 대해 “매일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으로 진지한 것 같다”며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역사적 거래”라는 인식을 밝혔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수교가 이뤄지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아랍의 대의’는 무너지고 하마스는 헤어나오기 힘든 고립에 빠지게 된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이스마일 하니야 하마스 대표는 7일 공격 이후 방송 연설에서 “저항자들 앞에서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실체(이스라엘)는 어떤 안전 보장도 해줄 수 없다. 당신들(아랍 국가들)이 이들과 서명한 모든 관계 정상화 합의는 (팔레스타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이번 결정은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요스트 힐테르만 국제위기그룹 중동·북아프리카 국장은 아에프페 통신에 “대중들이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을 때 (이스라엘과) 관계정상화를 진지하게 임할 아랍 국가들은 없을 것이다”고 평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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